아내와 함께 달리면서

by 전우 호떡

올해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달렸다. 1년 전, 다시 함께 살게 되었을 때부터 마음속에 품어왔던 아내의 바람이었다. “우리 같이 운동해요.” 그 짧은 한마디는 머릿속을 오래 맴돌았지만, 실행으로 옮기기까지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추운 겨울을 지나고,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 의지를 실천할 수 있었다. 의지는 충분했지만, 작은 주저함과 익숙한 나태함이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결혼한 지 스물한 해, 첫째가 스물한 살이니 세월은 어느새 한 폭의 그림을 스쳐본 듯, 눈을 한 번 깜빡인 듯 흘렀다. 그중 5년은 떨어져 살았다. 둘째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나는 주중에는 타지에서 지내야 했고, 주말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낯선 일상을 마주한 나는 텅 빈 방의 적막을 견뎌냈고, 아내는 묵묵히 아이들을 챙기며 혼자서 집을 지켜냈다.


두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야 아내는 일을 시작하며 자기 삶의 여백을 조금씩 채워갔다. 젊은 시절 나는 늘 일이 바쁘다며 내 속도대로만 걸었다. 주중엔 일터에서, 주말 모임과 운동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가족과 함께한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함께한 추억이라 해봐야 근교 나들이나 동네 산책 정도였다. 다시 함께 살게 된 뒤, 아내는 종종 말했다. “달려보고 싶어요!” 그 짧은 속삭임에는 오랜 기다림과 은은한 소망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말 속에 깊이를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달리기는 늘 가족을 중심에 두고 살아온 아내에게 있어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내딛는 한 걸음이었다.


우리는 말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같이 호흡하며 고요하게 가급적 평지를 달렸다. 오르막과 내리막길에서는 속도를 맞추기 위해 급작스럽게 힘이 더 들어가기 때문에 처음부터 무리하면 힘에 부쳐 재미를 찾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가을바람이 우리를 감싸안고, 나무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길 위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하나가 되어 든든했다. 아내와 함께 달리면서 속도를 늦추고, 보폭을 맞춘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서로에게 맞춰왔고, 여전히 맞춰가고 있음을.


바닥을 스치는 발끝의 소리, 서로의 호흡이 엮이는 리듬. 서툴고 느려도 함께 달리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아내의 존재를 새롭게 느꼈다. 나는 그 길 위에서 아내의 '끝없는 인내'와 '단단함'이 한 걸음 한걸음에 스며 있음을 다시 보았다. 자신의 시간을 미루고, 가족의 그림자가 되었고, 묵묵히 단단하게 우리 곁을 지켜주었다. 아내는 한 번 결심하면 끝까지 해내는 단호한 성향으로 이제 아내는 자신을 위한 시간을 걸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그 곁에서 함께 숨을 고르며 달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내의 보폭에 힘이 실리면서 활력이 더해지고, 집안에 기운찬 에너지가 더 돌기 시작했다. 아내의 맑은 웃음소리는 집 안 가득 환하고 온화한 빛으로 번져 나간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겐 ‘함께’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 닿는 시간, 서로의 호흡을 맞춰가며 나아가는 이 시간이 삶을 더 굳세게 엮어주었다.


발걸음이 한마음이 되어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다시 ‘우리’가 된다. 달리기 끝자락에서 아내의 웃음이 바람에 흩어지고 그 소리는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같다. 힘들어지면 우리는 천천히 숨을 길게 고르고, 이 길 위에서 나란히 다시 같은 방향으로 뛴다. 가을바람 속에서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달리기는 새로운 여정이 되고 있다. 옆에서 나란히 속도를 맞춰 달리는 지금처럼, 앞으로의 삶도 같은 보폭으로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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