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면서 가벼워짐

by 전우 호떡

겨울의 한기가 조용히 세상을 덮었다. 산책을 나섰다가 옷을 얇게 입은 것이 마음에 걸려, 갈아입을 요량으로 다시 집에 들어왔다. 문을 닫자 생각이 바뀌었다. 다시 나가기가 귀찮아졌다. 대신 주말에 계획해 두었던 달리기를 조금 미루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접었다가, 다시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자마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달리고 있는 이를 보았다. 같은 방향이었다. 그는 이미 달리기를 시작해 앞서 있었고, 나는 자연스레 그를 따라 달리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내 내가 앞서고, 그는 내 뒤에서 일정한 보속으로 달렸다. 내가 인도하고, 그는 묵묵히 따르는 듯했다.

나는 이정표 없는 망망대해를 가르듯 겨울의 한기 속을 달렸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길을 개척하듯 나아갔다. 그는 내 발자취를 따라, 나를 거울삼아 여유 있게 달렸다. 그를 의식한 나는 평소보다 속도를 높였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는 어느 순간 나를 덮치듯 앞질렀다. 순식간이었다. 앞서 달리던 자존심이 건드려졌다. 나는 잠시 호흡을 고른 뒤 단숨에 따라붙어 그를 추월했다. 그리고 차이를 벌리기 위해 한동안 그 속도를 유지했다.

처음부터 같은 공간에서 함께 달린 이가 있었기에, 예전과는 다른 감각으로 임할 수 있었다. 깊고 넓어진 호흡이 속도를 불러왔고, 속도는 다시 호흡을 재촉했다. 오랜만에 긴박한 템포 속에서 달리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속도가 호흡을 만든 것인지, 호흡이 먼저 속도를 이끈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재미있게 달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55분에서 1시간 사이다. 대개는 58~59분대에 들어오고, 빠르다 싶을 때가 55분이었다. 오늘은 달랐다. 정확히 50분 만에 현관 문을 열었다.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일주일 동안 쌓인 것은 몸무게뿐만이 아니었다. 스트레스와 걱정도 함께였다. 오늘 달리지 않았다면 그것들은 더 불어났을 것이다. 비우기로 한 선택은 좋은 결과를 낳았다. 더구나 함께 공존하며 경쟁하던 이가 있어, 적적하지 않게 좋은 기록으로 달릴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재미와 보람이 함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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