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생활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자 작년에 무관에 지원했고, 다행히 선발되었다. 올해 자리를 옮겨 무관 교육장이 있는 건물에서, 십 년 가까이 세월 속에서 멀어져 있던 형을 만났다. 연락이 끊긴 뒤에도 마음속에서는 늘 형을 그려왔지만, 헤어질 당시 형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했기에 먼저 연락할 수 없었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나에게는 기적처럼 느껴지는 운명적인 해후였다.
90년대 중반 생도 시절, 우리는 같은 분대원이었다. 형은 3학년이었고, 나는 1학년이었다. 형이 건강상의 이유로 휴학했고, 내가 2학년이 되었을 때 형은 복학해 다시 같은 분대원으로 만났다. 두 번의 만남이 겹친 인연은 자연스레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형은 어질고 인자한 사람이었다. 말끝의 뉘앙스를 높이지 않고, 늘 차분하게 평정을 지키려 애썼다. 나는 형을 좋아하게 되었고,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늘 ‘형’이라 불렀다.
형은 단 한 번도 내게 싫은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사람이라면 잔소리나 부정적인 말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 기억 속의 형은 늘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었다.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밝게 대해주었고, 내가 실의에 빠졌을 때는 “그럴 수 있지, 괜찮다”며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형은 많은 시간을 나와 함께해 주었다. 외박 복귀하던 일요일 저녁, 수제비를 사주곤 했다. 형과 함께 먹던 수제비는 맛도 양도 늘 넉넉했다. 외박 중 있었던 일들, 집에서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휴가 때가 되면 집 근처로 불러 갈비를 사주었다. 1학년 여름 휴가부터 시작해 매번 빠짐없이 나를 불러주었고, 나는 동생과 함께 가 배부르게 먹곤 했다.
그렇게 형과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며 나는 자연스레 형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형은 깊은 속을 가진 사람이었고, 재수를 거쳐 사회를 경험한 만큼 삶에 대한 시야도 넓었다. 형에게 털어놓으면 마음이 놓였고, 군 생활에서 중요한 판단의 기로에 설 때마다 형에게 물어 방향을 정했다. 형이 늘 나를 이끌고 아껴주었기에, 나는 마음을 열 수 있었다.
“그럴 수도 있지!” 형의 이 말은 여유롭고 관조적인 위로였다. 친형과 동갑이어서였을까, 형은 더욱 형처럼 느껴졌다. 어머니도 학교 행사에서 형을 만나고 인상이 참 좋다며 무척 좋아하셨다. 재학 중에는 안부를 나누셨고, 졸업 이후에는 내 진로를 두고 형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다.
어머니가 내 처신을 안타까워하셨던 때가 있었다. 나는 그때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고, 지금 돌아보면 이성적이지 못한 판단이었다. 형에게 간절히 부탁해 내 마음을 돌리려 했던 기억도 있다. 형은 직접 만나지 못할 때에도 전화로 여러 차례 타이르며 그 길을 가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내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형은 나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었고, 어려운 시절에 곁에 있어 주었다. 나를 구렁텅이에서 끌어내기 위해 애써주었던 형에게 고마웠지만, 그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공간적으로 멀어지며 연락이 닿지 않았고, 십 년 전 형에게 큰 그늘이 드리워지면서 우리는 절연에 가까운 시간을 맞이했다. 생도 생활의 시작에서 만난 형을, 이제 군 생활의 종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형은 나를 보며 미안하다고 했다. 사정이 있어 연락하지 못했다며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형이 겪은 변화는 형 개인을 넘어 가족 모두가 감당해야 했던 난제였다. 십 년 만에 만난 형은, 그 난제가 거의 정리되는 시점에 나에게 연락하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참으로 기뻤다. 그동안 형을 생각하며 가끔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며,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하곤 했었다.
마음속에 그리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형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 기쁨이 더 컸다. 아름다운 만남은 상대에게 영향을 주어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나는 형을 만나며, 이웃에게 믿음을 주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그 실천이 얼마나 완전할지는 모르지만, 그런 철학을 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청년 시절 가장 빛나던 기억 속에는 늘 형이 있었다. 그 시간을 다시 마음에 새기며, 흘러간 날들을 그리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 걸어가고 싶다. 십 년의 공백마저 품어 안고 다시 이어진 이 인연이, 남은 날들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기를 바란다. 다시 만나 지난 추억을 더 깊이 새기며, 형과 함께 감탄할 내일들이 이어지기를 조용히 소망한다. 청년 시절부터 여기까지 나를 이끌어 준 형에게, 또한 오늘 운명 같은 만남에 깊이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