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도 시절 흠모하던 선배님과 지휘관으로 함께 근무할 기회를 가졌던 지난 한 해는 내 삶에서 유난히 빛나는 시간이었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조직 안에서 훌륭한 사람들, 실력 있는 이들과 호흡하며 지냈다. 갈등이나 번민은 거의 없었고, 몇 가지 가시적인 성과까지 거두며 보람 있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보직을 내려놓는 지금, 나는 다시 생도 시절로 돌아가 깊은 향수에 잠긴다.
그 시절, 나에게는 늘 본받고 싶은 선배님들이 있었다. 그중 한 분이 내가 속한 중대 대형의 사선 너머에 서 있던 다른 중대의 리더였다. 학과 출장 보고가 있는 날이면 선배님의 용모와 자태, 울림 있는 목소리는 단연 돋보였다. 단아한 인상 속에는 선비의 기풍이 서려 있었고, 동시에 무인으로서의 기개 또한 느껴졌다. 광장을 울리듯 힘 있게 뻗어나가던 음성은 자연스레 나의 뇌리에 깊이 남았다.
나는 그 선배님을 멀찍이서 바라볼 뿐이었다. 같은 중대도 아니었고, 인연을 만들 계기도 없었다. 다소곳하면서도 진중한 태도, 무게감 있는 걸음걸이를 기억한다. 그러나 동기들과 어울릴 때면 호탕하게 웃으며 짓궂은 장난을 건네는 모습도 보았다. 엄정함과 소탈함이 함께 어우러진 사람, 그것이 내가 바라본 선배님의 모습이었다.
1990년대 중반 처음 선배님을 알게 된 뒤로, 나는 생도 시절의 기억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 십오 년이 흐른 어느 날, 야전에서 근무하던 중 부서 홈페이지에서 상급 제대에 근무 중인 선배님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역시 훌륭한 선배님은 저 자리에서 저렇게 서 있구나.’ 부러움과 함께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동경이 마음을 스쳤다.
1년 후 소령 정규교육을 마친 뒤, 나는 선배님이 근무하던 곳의 인근에서 일하게 되었다. 선배님이 먼저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응했다. 내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선배님은 깊이 고마워했다. 그 일을 계기로 교류가 시작되었고, 선배님은 나를 아끼며 지켜보아 주었다. 마침내 선배님의 자리에 나를 추천해 주었고, 나는 후임으로 그 직책을 맡았다. 큰 과오 없이 소임을 마쳤고, 그 결과로 진급의 영예도 안을 수 있었다.
보직을 내려놓은 뒤에도 나는 선배님을 형처럼 따랐다. 꾸준히 연락을 이어가며 관계를 다져갔다. 그리고 다시 십오 년여의 시간이 흘러, 우리는 지휘관과 과장으로 뜻깊게 마주하게 되었다. 생도 1학년 시절, 사선 너머에서 바라만 보던 막연한 존재가 이제는 함께 고민을 나누는 동료가 되었다. 동경은 인연이 되었고, 인연은 마침내 동행이 되었다.
선배님은 한 분야에서 이십 년 넘게 몸담으며 경험과 식견을 쌓아 온 전문가였다. 나는 곁에서 어깨너머로 배우며 실체적인 가르침을 얻었다. 선배님은 언제나 살뜰히 나를 챙겼고, 모임에도 함께 데려가 부대 밖 사람들과 교류하게 하며 시야를 넓혀 주었다.
사람은 멀리서 보면 장점만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단점도 드러난다. 그로 인해 관계가 멀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공손함을 잃지 않은 채, 혹여 단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조심스레 짚어주었다. 멀어질 빌미를 만들지 않으려 애썼다. 성찰이 없으면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결국 주변을 닳게 만든다. 스스로 돌아보기 어려운 순간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 주었다.
삼십 년 가까이 품어온 막연한 동경은 선배님의 노력과 세월이 응축된 자리에서 현실이 되었다. 선배님은 부서원들의 목소리를 수평적으로 경청했고, 제도를 정비하며 시설을 개선하는 등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구성원들이 한데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자주 마련하며, 지휘관이면서도 한 사람의 동료로 다가갔다. 특히 모든 책임을 기꺼이 떠안으려는 태도는 아랫사람들의 진심 어린 존경을 이끌어냈다.
진실한 소통과 꾸준한 노력 끝에, 연말에 선배님은 진급의 영예를 안고 상급 제대의 부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연한 수순이라 여겨지면서도, 과장으로서 그 곁에서 함께 근무했다는 사실이 내게는 더없는 자부심으로 남는다. 지난 한 해, 내 역사 속에서 유난히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선배님 덕분이다. 그 감사의 마음을 늘 간직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