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경계에서

by 전우 호떡

아침에 길을 나서다 경찰서 앞에서 한 사람을 보았다. 그는 머리에 피를 흘린 채 경찰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휴지로 상처를 감싼 채 “왜 맞았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살이 터져 피가 날 정도라면 얼마나 아플까.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할 텐데, 붕대 하나 없이 서 있는 모습이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그 이른 아침에 마주한 장면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폭력은 이유를 막론하고 정당화될 수 없다. 때린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하고, 맞은 사람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한순간의 충돌은 단순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깊은 상처와 무거운 대가를 남긴다.


며칠 뒤, 기차역으로 향하던 길에서 또 다른 장면을 목격했다. 버스정류장 근처가 소란스러워 돌아보니 두 사람이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연배 차이는 있었지만 서로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보아 처음 만난 사이 같았다. 감정이 점점 격해지더니 한 사람이 욕을 내뱉고 도망쳤고, 다른 사람은 “왜 욕을 하느냐”며 뒤쫓아갔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달아나던 그는 결국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붙잡혔다. 서로 멱살을 잡은 채 금방이라도 주먹이 오갈 듯했다. 순간 긴장이 감돌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장면이 이어졌다.


“내가 언제 욕했습니까.”
“욕하셨잖아요.”


잠시 실랑이가 이어지더니 한 사람이 말했다.
“놓고 이야기합시다.”
“예, 그러시죠.”


두 사람은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조금 떨어져 서서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가던 방향과 같아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사람이 먼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며칠 전 보았던 참상이 떠올라 혹시라도 상황이 악화될까 긴장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그 장면이 무척이나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같은 시작이었지만 전혀 다른 결말이었다.


싸움의 원인은 대부분 한쪽에만 있지 않다. 서로의 감정이 부딪히며 커져간다. 그러나 그 흐름을 멈추는 방법 역시 단순하다. 누군가 먼저 멈추고, 한 발 물러서고, 자신의 감정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 순간을 넘기지 못하면 작은 언쟁은 쉽게 돌이킬 수 없는 충돌로 번진다.


조금만 멈춰 돌아보면, 그 일은 대개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감정에 휩쓸린 순간에는 그것이 전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더더욱 스스로를 절제하는 힘이 필요하다. 순간을 견디는 선택이 결국 나와 상대 모두를 지키는 길이 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서로 부딪히고 얽히며,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렇기에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다스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감정에 휘둘려 윤리와 질서를 무너뜨린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사람이 이성적인 존재라는 것은, 감정을 느끼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시당하거나 상처받는 순간, 누구나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는 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감정의 끝에 무엇이 남게 될 것인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가만히 있을 것’을 말했다.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말고 그 순간을 지나가게 두라는 뜻이다. 감정은 말과 행동을 통해 증폭된다. 작용과 반작용이 이어지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된다. 반응하지 않는 것, 얽히지 않는 것, 그 자체로 감정의 흐름을 끊어내는 힘이 된다. 그것은 나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사람을 대할 때는 표정과 태도 또한 중요하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처럼, 우리의 표정은 관계의 방향을 바꾼다. 거친 말투와 비아냥은 상대의 감정을 자극하고, 결국 갈등을 키운다. 반대로 부드러운 태도와 미소는 긴장을 풀고 마음을 열게 한다.


평소의 작은 습관이 위기의 순간을 결정한다. 감정을 다스리는 힘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반복된 노력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중 가장 쉬운 방법은 웃는 것이다. 웃음은 나를 안정시키고, 주변에도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내가 먼저 웃으면 상대도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변화가 결국 더 큰 갈등을 막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이 향하는 방향이다. 순간의 분노를 넘어서려는 노력, 그리고 서로를 해치지 않으려는 마음. 그것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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