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력

by 전우 호떡

군인으로서 숙명의 과업인 훈련을 앞두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고민이 앞선다. 훈련 기간 체력도 요구되고 구성원의 팀워크도 좋아야 하지만, 무엇보다 훈련에 임하면서 감정이나 욕망을 이성적 의지로 눌러 이기고, 벽에 부딪혀도 어떠한 난관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훈련에 임할 때마다 생도 시절 나를 지탱하고 이끌어주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으며 ‘할 수 있다!’라는 결의를 다짐하게 된다.

생도 1학년 때 하기 군사훈련을 마치고 2학기가 시작된 후 첫 번째 뜀걸음이 있었다. 당시의 뜀걸음은 총기만 휴대한 단독군장과 군장을 메고 뛰는 완전군장의 2가지 형태를 격주 단위로 했었다. 보통 완전군장을 메고 뛰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지만, 완전군장을 메고 뛰면 속도를 천천히 조절해 가는 반면에, 단독군장은 가볍게 뛰면서 질주할 수 있어 오히려 더 큰 부담이 되었다. 그날 복장은 단독군장이었다. 그러나 8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은 직후라 체력에는 자신감이 붙어 뜀걸음에 대한 의지는 불타올랐다. 금요일 오후 일과를 마치고 계획된 뜀걸음 시간이 되어 연병장에 집결했다. 9월 초로 기억되는데 유난히 무더웠다. 그날따라 이상하리만큼 태양이 작열하고 아스팔트 대지 위에 아지랑이가 피어날 정도로 여름의 무더위가 이어져 뜨거웠다.

더위로 인해 예상하지 못한 부담감이 더했지만, 이윽고 출발했다. 조금만 뛰었는데 후끈 오르는 열기로 금세 호흡이 가빠 왔다. 머리는 방탄헬멧이 내리누르는 듯한 무게감이 있었고, 머리의 열기는 빠져나가지 않은 듯 갑갑함이 더했다. 당시의 전투화는 가죽으로 만들어져 공기를 배출하지 못했는데, 발은 어느새 땀이 범벅이 되어 축축해졌다. 몸 상태는 정상에서 출발했지만, 금세 땀으로 흠뻑 젖은 전투복의 열기로 인해 ‘앞으로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할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내딛는 한 걸음의 보폭은 쉽지 않았다.

뜀걸음 코스 중에 오르막 구간이 있었다. 그 구간에서는 항상 질주한다. 숨도 가빠 오고 몸은 점점 조여 오는 데 오르막에 다다르니 긴장감이 더했다. “악이다! 깡이다”를 외치며 힘찬 구호와 함께 질주하며 오르막을 극복하는 건 당시의 관행이었다. 너무 힘이 들어 구호가 나오지 않을 정도였는데, 뒤처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다행히 오르막을 오른 후에 천천히 호흡하며 숨 고를 시간이 주어져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모두 힘들었기 때문이다.

코스는 학교를 크게 두 바퀴 돌며 돌아오는 과정이다. 이제 한 바퀴 돌았다. 남은 한 바퀴에 대한 중압감이 밀려왔다. 한 발짝 한 발짝 천 근의 무게가 있는 다리를 끌어올리는 순간은 신체의 극심한 통증을 동반했다. 열기로 호흡하기가 여의치 않았고, 모든 조건이 나를 옥죄고 있었다. 이대로 의식 없이 멈추면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고, 대열은 앞에 가는데 나만 정지하면 바로 그 순간 낙오하게 된다. 지금까지 달린 만큼 앞으로도 그만큼이 남아 있었다. “이제는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 그 순간 절대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왜 멈출 수 없는지! 계속 달리면서 대열에 합류해야 하는지를!”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랑스러운 아들이라 여기시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버티면 된다. 고통은 영원하지 않다. 조금만 참으면 끝난다!” 이를 악물고 달렸다. 군가를 부르려고 했지만, 부를 수 없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호흡을 아끼느라 힘에 부쳐 부를 수 없었다. 함께 뛰었던 동기들에게 지금도 미안한 마음 그지없다. 능력은 부족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사력을 다해 겨우 도달할 수 있었다.

1학년 때 아스팔트 대지 위에 태양이 작열하는 아지랑이 속에서 숨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멈추고 싶었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가슴에 품으며 나 자신을 이겨냈다. 내가 언제나 최선을 다하리라 믿어주시는 소중한 분들의 응원은 나에게 어떠한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주저앉고 싶은 본능을 이성적 의지로 억누르며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달리면서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다. 달리면서 나 자신과 싸움에서 이긴 나는, 나를 넘어서는 발전하는 나와 하나의 존재로 순간의 힘겨움을 이겨내고 거듭난다. 멈추지 않고 나를 넘어서며 달리는 모습 속에 변화와 성장의 기운이 샘솟는다. 그 기운이 이어져 이제는 뜀걸음 하는 동안은 심장의 급격한 뛰어오름이 있어 좋고, 뜀걸음을 마친 후에는 평온을 찾아오는 심장의 고요함이 느껴져서 좋다.

2023년 9월 양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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