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성의 바탕에서 질서 있는 안정된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이성에서 오는 행복과 비교되는 쾌락은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는 순간의 감정으로 지속적이며 온전하지 않다. 말초적인 감정은 이성을 혼란하게 하고, 평안과 질서를 무너뜨리기 마련이다. 행복은 이성을 잃지 않는 질서 가운데 찾을 수 있다. 한때 당장은 진출이 어렵다고 여겼던 어려운 시기에 이성적으로 뭔가 보람을 찾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되었다. 할 수 있는 자기 관리의 수단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대로 멈춰 설 수 없어 전진을 위한 수단으로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고, 바닥으로 치닫는 내려간 마음을 끌어올릴 에너지를 얻기 위해 달렸다.
의지와 능력의 관점에서 정신적 자세가 의지라면, 육체는 능력의 문제이다. 정신이 추구하는 만큼 육체가 따라가야 하는데, 아무리 목표가 높다고 해도 능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목표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달리기는 이런 능력의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다. 달리기는 팔, 다리에서부터 신경의 마디마디를 움직이는 전신운동이기에 더욱 좋다. 할 수 있다는 각오가 헛된 구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실질을 채워나가고 능력을 키워야 한다. 온몸을 불태워야 하는데, 불태울 몸이 없다면 낭패일 수밖에 없다.
육체가 건강하지 않으면 행복을 느낄 수 없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본은 육체의 건강에서부터 출발한다. 육체와 정신의 건강, 모두 중요하다. 어디에 가중치가 있다기보다 육체와 정신,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몸이 아파 건강을 잃으면 행복은 요원해진다. 한때 허리와 다리를 다쳐 제대로 걷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이러다 장애를 입지는 않을지 걱정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가 몇 달 만에 겨우 회복했었다. 다 낫기까지 일상에 큰 제약을 받으니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그보다 더한 곤욕이 없었다. 능력이 없는 의지는 아무런 효용이 없다. 정신을 받쳐 줄 육체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였다.
꽤 오랫동안 운동을 안 했다가 체육대회가 열려 축구시합에서 화를 입었다. 축구는 과격한 운동이기에 평소 운동 안 한 사람에게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금요일 체육대회 날은 그런대로 지나갔는데,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잠들 무렵 몸살 기운이 들더니 월요일 아침에 응급실로 향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졌다. 영양제를 처방받고 숙소로 돌아와 그때부터 온종일 앓아누웠다. 허리 통증이 심해지더니 자다가 다리가 찌릿찌릿 저려와 잠을 깨고 다리가 아파 잠을 더 이룰 수 없었다. 신경외과에서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며 단단히 경고했다. 그렇게 2개월 동안 조심조심하며 겨우 원상태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때 무리한 운동은 한순간에 몸을 망가뜨릴 수 있고, 몸이 온전하지 않고서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없음을 깨달아 그때부터 건강관리를 위해 꾸준히 달렸다.
달리면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힘은 소모나 낭비가 아닌 창조의 힘이다. 평소 달리기 할 때 드는 비교적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활력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부득이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때로는 밤을 지새울 때 상당한 체력이 필요하다. 이런 때 달리기를 통해 비축된 에너지가 효용을 발휘할 수 있다. 축 늘어져 버리지 않고 쫄깃쫄깃 탱탱하게 신경조직이 살아 있는 기운이 있고, 그 기민함으로 의욕을 잃지 않는다.
달릴 때는 목표치보다 조금 더 뛰려고 애쓴다. 버티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달리고, 버팀을 너머 도약하는 힘을 얻기 위해서 한 바퀴 더 뛴다. 에너지를 다 쓰고도 거기서 주저앉지 않고, 또 다른 힘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뛰면서 고통이 오면 그 순간부터 근육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근육은 몇 번의 고통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세포의 수 없는 수축과 팽창을 통하여 찢어지고 다시 이어지고를 반복해 완성된다. 근육이 생성되려면 적어도 수개월 동안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계치를 넘는 고통을 이겨내고 끈기 있게 지속해야 근육이 생긴다. 인생의 성장은 근육이 만들어지는 이치와 비슷하다. 인생은 성장과 발달을 전제로 하지만, 자연히 흘러가지 않는다. 시간과 노력을 쏟을 때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달리기 위해서 당연히 식단을 조절해야 한다. 단백질만 먹는다거나 칼로리를 계산하면서 복잡하게 운동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포만감에서 뛰지 않도록 적게 먹으려 노력한다는 단순한 의미이다. 오후에 뛰게 되면 맛있는 반찬이 나와도 점심을 가볍게 먹는다. 먹고 싶지만, 뛸 때를 생각해 참는다. 언젠가 이른 아침에 눈이 떠져, 방 안에 멍하니 있다가 문득 보람 있게 하루를 시작하자는 생각에 달렸다. 가벼움에서 시작하니 쑥쑥 나아갈 수 있었다. 공복에 뛰면 행여 골병들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행동으로 옮기고 나서 쓸데없는 생각임을 깨달았다. “속을 완전히 비우는 게 이렇게 편하다니!” 이른 아침 일어나 달리고 싶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어려운 사정이 애석할 따름이다. 달리면서 점점 더 가벼워지고 있음을 느끼고, 나를 비우고 내려놓게 되었다는 점은 또 한 가지의 행복이다.
달리는 동안은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몰입하며, 나 자신에게 충실해지려고 노력한다. 그 시간은 머리와 가슴을 비울 수 있어, 하루에 적어도 한 시간은 내려하는데 쉽지 않다. 때때로 그냥 비워버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 달리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 힘이 들기에 생각할 여유가 없고, 잠시 다른 생각이 들다가도 달리기에 집중하면 이내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그 시간을 기다리게 되고, 그 시간을 찾으려는지 모른다. 달리면서 반복되는 오직 하나의 동작에 내 몸을 맡기고 나에게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향한 더 큰 기대 속에 행복을 꿈꿀 수 있으나, 행복은 지금 느끼고 있는 즐거움과 만족, 기쁨이 아닐까 생각한다. 행복의 감정은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함에서 출발할 수 있으나, 행복은 현재 즐거움과 보람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에 행복을 이루는 두 가지 축은 재미와 의미를 느끼는 데 달려 있다고 본다.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갖기란 쉽지 않다. 재미만을 느낄 수 있고, 때때로 재미는 없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되면 그로 인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최악의 상황으로 재미와 의미가 모두 없을 때의 어려움이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 하는 일에 재미와 의미를 찾게 된다면 더 잘할 수 있다. 어리석은 이는 재미와 의미를 못 느끼며 하는 일을 계속하는 사람이고, 현명한 사람은 지금 하는 일에 재미와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이다.
무슨 일이든지 재미와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면 행복을 느끼게 된다. 달리기는 나에게 재미와 의미를 모두 주기에 달리면 행복할 따름이다. 언젠가 한강에서 마라톤 선수의 복장으로 마른 몸을 이끌고 한발 한발 성큼성큼 뛰어가는 한 백발의 어르신을 만났다. 반바지와 소매 없는 티셔츠, 군살 하나 없는 균형 잡힌 체형, 구부정한 허리와 마른 팔다리의 근육! 그 속에서 힘겨움을 이겨내는 재미와 열심히 살아가는 의미를 보았고, 그분을 향한 동경이 달리기로 이어졌다. 그분은 실체가 있는 본보기를 보여주셨고, 그 모습은 아직도 실루엣처럼 남아 나를 인도하고 있다.
2021년 가을 공현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