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한 지도 벌써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관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화장실에 갔었다. 너무 피곤해서 좌변기에 앉아 머리를 숙이고 엎드린 채 그대로 잠들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깨어 보니 정말 개운했다. 피로를 다 잊을 수 있을 만큼 상쾌해졌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또 한 번은 불침번 근무를 서기 전에 전번 근무자가 나를 깨우며 화를 냈던 적이 있었다. 그의 말은 좀 전에 깨웠을 때 분명히 앉아 있는 걸 보고 나왔는데, 십여 분을 기다리다 다시 올라와 보니, 다시 자고 있었다는 것이다. 난 단연코 그가 깨운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때를 돌아보면 항상 피곤해서 거의 기절할 정도의 피곤한 상태로 다니지 않았나 생각한다. 자다가 몸을 부르르 떨며 깬 적도 상당히 있었다. 그때는 그런 줄 몰랐었는데, 그 과정을 지나 이제 와 보니 새삼 느껴진다.
군사훈련 중에 유격훈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학년 하기 군사훈련의 정점은 유격훈련이었지만, 생도 시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때를 떠올리며 용기를 얻고 있다. 2주 기간이었는데, 첫 주는 유격체조와 장애물 극복 위주의 체력단련이었고, 둘째 주는 독도법과 야간 산악행군으로 구성되었다. 첫 주는 하루 꼬박 8시간 내내 연병장에서 혹독하게 땅 위를 굴렀다. 첫날 훈련을 받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에 알이 배어 근육통으로 이불을 개지도 못할 만큼 팔을 들어 올리기조차 어려웠다. 둘째 주에 접어들어 산악행군을 경험해 보니, 첫 주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군장의 무게는 텐트까지 들어가다 보니 20킬로그램이 넘었고, 군장을 메고 나면 어깨를 짓누르는 압박감으로 어깨에 바로 쥐가 날 정도였다. 저녁을 먹고 출발해 다음 날 아침까지 고된 행군이 이어졌다. 차라리 산에서 굴러 떨어져 다쳐서 훈련에서 열외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더구나 당시 나는 내성 발톱으로 인해 왼쪽 엄지발가락에 고름이 가득 차 있었다. 한발 한발 디딜 때마다 전투화와 살의 마찰로 인해 이가 갈리는 듯한 통증이 있었다. 특히 올라갈 때보다 내리막길에서 충격이 더해 엄청 아팠다. 매 순간순간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생각났고, 나와의 승부였기에 나중에 후회 없도록 하고 싶었다. 뒤처짐은 낙오를 의미하기에 오로지 끝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4일간의 대장정이 끝나, 마지막 아침 최종 목적지가 보이자, 힘을 내어 뛰어서 도착해 전투화와 양말을 벗었다. 고름이 터진 자리에 파리가 주저앉았다. 옆에 동기들이 ‘참 독하다. 이 발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라고 칭찬인지도 모를 위로를 전했다. 훈련을 마치고 복귀해 바로 발톱을 뽑았다. 통증이 없어지니 살에 박힌 가시를 뺀 듯 날아갈 것만 같았다.
사관학교 4년의 수련 동안 부모님을 떠올리며 매 순간을 참으며 흘린 땀방울은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준 밑거름이었다. 2학년 하기 군사훈련 기간 4일간의 산악행군 동안 어깨를 짓누르는 군장의 무게를 이겨내고 전투화의 마찰이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안겨주는 고름 찬 발가락은 “어떠한 순간도 이보다 더한 악조건은 없다”라는 위로로 나를 이끌어주는 밑거름이 되었다. 고통이 영원하다면 우리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고통은 계속되지 않는다. 고통은 한순간이다. 순간의 고통을 참으며,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목표에 이를 수 있다. 생도 시절 평상시 기절할 정도로 극도의 피로를 늘 안고 있었지만, 정지하지 않고 늘 깨어 있으며 매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생도 시절 힘에 버거운, 버티기 어려운 순간을 이길 수 있도록 부족한 아들을 늘 자랑스러워하시는, 힘이 되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며, 부모님께 항상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리라 다짐한다.
2023년 9월 양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