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는 신체의 근육을 모두 사용하기에 호흡이 가빠오고 신체에 무리가 가면서 힘이 들 수밖에 없다. 달리는 행위 자체는 항상 쉽지 않지만, 왜 계속하게 되는지 달리기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힘에 부치기에 때로는 ‘이렇게 힘든데 왜 사서 고생해야 하나’ 하는 현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분별없는 생각도 들었지만, 항상 달려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고 자신할 수 있을 만큼 달리면서 보람을 찾으며 삶에 커다란 의미를 두고 있다. 어렵고 힘든 시절 달리기를 통해 나 자신을 관리하면서 이겨낼 수 있었다. 돌아보면 달리기와의 인연은 평생 계속되었고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 했던 추억을 되돌아본다.
맨 처음 달리면서 힘들었던 기억은 중학교 때 처음으로 1.5km 달리기를 측정했을 때였다. 지구력을 갖고 운동한 적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당시 체력을 측정한다고 몇 가지 종목을 한 거 같은데, 다른 종목은 기억에 없고 달리기 했던 기억만 있다. 반 친구들과 여러 명이 그룹을 나누어 뛰었는데, 한 바퀴 정도 뛰고는 너무 힘들어서 걸었다. 나는 초등학교 등하교를 위해 걸어서 30분을 오가고, 친구들과 공을 차고 놀 때를 제외하고는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 당시는 운동부에 가입된 친구들 외에는 체계적으로 운동을 배우지도 또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운동으로는 1.5km 달리기를 잘할 수 없었다. 모두가 힘들어서 조금 뛰고 지쳐서 걸었을 때 친구 한 명이 유일하게 계속 뛰며 1등으로 들어왔다. ‘우리 모두 못하는 걸 단 한 명만이 해내다니’ 대단하면서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폐활량이 좋아서인가, 타고났구나’ 생각했지만, 그는 매일 4시간씩 학교와 집을 오가며 걷기와 뛰기가 습관이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때 한번 그의 집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걸어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거리에 놀라웠다. 아침에 출발했는데, 반나절 만에 그의 집에 도착했다가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거리도 너무 멀었고, 돌아올 때는 해가 질 무렵이라 버스를 타고 올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가 통학으로 다녔던 거리는 거의 10km가 되는 꽤 먼 여정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줄곧 그 먼 거리의 학교를 걸어서 다닌 그에게 나의 가슴 깊은 곳에서 잔잔한 파문이 일었고, 동경심이 생겼다. 체력은 하루 이틀 만에 길러지는 게 아니라 오랜 습관을 통해 만들어짐을 알게 되었고, 그때 처음으로 달리고 싶다는 묘한 매력을 느꼈다.
육사 선발시험 중 체력검정을 보던 날이었다. 체력검정은 달리기, 턱걸이, 윗몸일으키기의 세 종목이었다. 달리기가 걱정되었으나, 준비하지 않았다. 당시 사정으로는 준비할 만한 여유가 없었고, 준비한다고 해도 단시간 내에 잘할 수 없어 합격 기준만 넘으면 된다는 계산이 앞섰다. 그때도 달리기 코스는 1.5km였다. 고등학교에서는 체육시간 외에는 운동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중학교 때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무리 지어 함께 뛰면 조금은 낫다는 걸 알았기에 시험 보던 사람과 처음 만났지만, 함께 뛰자고 제의해서 동시에 출발했다. 최선을 다하려 했으나, 지치고 나니 동행할 수 없어서 그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 거의 걸음에 가까운 속도로 한참 뒤에 들어왔다. 함께 뛰었던 그는 준비를 많이 했기에 일정한 속도로 뛸 수 있었고, 그때는 그게 참 부러웠다. 나는 간신히 합격 기준을 통과해서 운 좋게 육사에 입학하게 되었다.
육사에 입학하기 전 기초군사훈련 기간의 어느 날 해 질 녘 연병장에 집합했다. 당시는 별도의 설명 없이 훈련이 진행되었던 터였지만, 우리의 심신을 더욱 단련시키기 위한 통과의례라는 생각이 들어 다부지게 마음먹었다. 처음에 선착순 달리기로 몇 번 돌았고, 이어서 교관이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더니 바로 또 한 번의 달리기가 이어졌다. 그는 내달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선착순으로 인해 이미 기운이 빠져있었다. 해는 이미 기울어 앞도 잘 보이지 않았는데 차이가 계속 벌어지게 되었고, 필사적으로 따라잡으려고 노력했으나, 의지만으로는 어려웠다. 그렇게 1시간 남짓 시간이 흘렀고, 훈련이었는지 기합이었는지도 모를 그날의 달리기는 끝이 났다. 나의 한계를 또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어, 달리기가 부족하니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다.
육사에서는 매주 금요일 마지막 과업으로 뜀걸음을 가졌기에 뜀걸음을 마쳐야 비로소 한 주의 과업이 종료되었다. 격주로 단독군장과 완전군장을 메고 뛰어 시간이 지나면 적응할 만도 했는데, 졸업할 때까지 매번 뛸 때마다 힘들었다. 매주 금요일 뜀걸음을 위해서 주 1회는 체육이나 태권도수업이 끝나면 같은 코스를 돌면서 적응하려 노력했다. 어떤 때는 내일 학과를 준비해야 하고 여유가 없어서 금요일 뜀걸음 전에 적응의 시간을 갖지 못한 채 한 번도 못 뛰고 바로 뜀걸음을 맞았다. 연습이 없었기에 더 힘들었고, 사전에 준비 못 하고 완충작용 없이 치르게 되는 과업에는 몇 배의 수고가 뒤따랐던 것 같다.
육사에서 4년 기간의 수련은 평생 흘린 땀방울의 반 정도를 쏟아낼 정도로 쉽지 않았다. 그 기간에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시간이 주어지면 늘 달렸고, 적어도 달리기 위해 노력했다. 제법 호리호리한 체격이 달리기에 적합해서인지 나와 잘 맞았고, 계속 노력하니 1년에 한 번 있는 체력측정 때는 동기와 함께 뛰면서 속도를 조절하며 도와줄 수 있을 정도로 기량이 향상되었다. 그렇게 달리기라면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소대장으로 부임해서도 시간이 있으면 달리기 위해 노력했다. 전방에 있을 때도 소대원들과 도로를 달렸다. 백 미터의 거리는 1등으로 들어오기 어렵지만, 수백 미터의 구간을 달릴 때는 1등으로 들어올 수 있을 만큼 괜찮게 달렸다. 며칠 간의 훈련을 나갈 때도 집결지가 정해져 일정 기간을 주둔하게 되면 시간을 내서 달렸다. 그렇게 달리기는 삶의 일부분으로 취미가 되었다.
가을에 대대 체육대회가 있었다. 중대 대항으로 축구와 계주에 출전했는데, 축구는 아쉽게 졌고, 끝으로 계주가 남아 있어 마지막 주자로 출전했다. 4개 중대 대항으로 4명씩 교대로 경합을 다투게 되었다. 우리 중대 전번 주자가 바통을 받을 때 그만 떨어뜨리게 되면서 꼴찌가 되었는데, 주자가 바뀌면서 다른 2개 중대 선수가 뒤엉켜 넘어져서 선두를 제외하고 3개 중대는 비슷하게 달렸다. 마지막 주자는 연병장 두 바퀴를 돌게 되어 있었다. 이윽고 마지막 주자로 내가 바통을 받았을 때는 선두와 거의 한 바퀴의 거리가 차이가 났다. 두 바퀴를 돌며 거의 따라잡았으나, 한 바퀴의 차이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불과 몇 미터 차이를 두고 2등으로 결승점에 들어와 매우 애석했다. “만일 세 바퀴를 뛰었다면 따라잡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나의 실력이 부족한 탓이었지만,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서 약간의 거리가 더 필요했기에 심지어 경기규칙에 대한 미련까지도 남게 되었다. 그런데 중대원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중대원들이 내 주위로 몰려와 정말 대단했다고 환호하며 헹가래를 쳐주었다. 헹가래 후에 무거운 마음을 가라앉히며 웃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조금 더 노력해 왔더라면 충분히 따라잡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늘 이러한 아쉬움과 부족함을 느꼈기에 나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달리게 되었다. 시간이 날 때 때로는 시간을 내서 달리기를 취미로 하고 있다. 취미를 하는 동안에는 즐거움과 의미를 느끼게 된다. 행복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오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뭔가 채워지는 마음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달리면 심폐기능이 좋아지고 혈액순환이 원활해지며 뼈와 근육이 발달하는 신체적 효과에서부터,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하려는 근성을 기르고, 힘들고 어려움을 통해 좀 더 겸손해질 수 있도록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또한, 결승점에 도착했을 때의 성취감과 젊음으로 자신을 관리하고 있다는 뿌듯함, 건강해지는 듯한 보람 등으로 달리기의 효용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렇게 달리기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짚어보니, 앞으로도 달리기를 통해 행복이란 감정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깨닫는다. 달리기의 묘한 매력은 스스로 우러나서 하기에 즐거움과 기쁨,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2022년 공현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