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중, 고교생으로 커버린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행복을 느끼게 되고, 이 순간 감사하게 됩니다. 자식들을 낳고 이렇게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첫째는 나랑 판박이처럼 닮아 첫째의 자는 모습을 보고 내가 잠자고 있는 것 같아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둘째는 어릴 때부터 볶음밥을 싫어해 먹지 않았습니다. 음식이 섞여 있는 걸 싫어해 먹지 않았고, 제 엄마가 음식을 일일이 따로 싸주면서 자주 애를 먹었습니다. 피는 못 속인다고 했는데, 둘째의 어릴 적 입맛이 어떻게 나를 닮았는지 궁금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서로 닮았습니다. 가족사진을 보면 나의 작은 눈에 비해 아내의 눈이 크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반반 섞여 조화롭기에 큰 눈과 작은 눈이 대비되지 않습니다. 부부의 얼굴은 서로 닮아갑니다. 언젠가 누가 처음 보는 우리 부부를 보면서 남매지간이 아니냐고 물어보길래, 우리 부부는 서로 마주 보며 한참 웃었습니다. 나는 기분이 좋았고, 아내는 그렇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때 아내도 즐거워하며 함께 웃었습니다. 부부의 얼굴을 서로 닮은 자녀가 있기에, 해를 거듭할수록 부부의 얼굴은 서로 닮아가게 됩니다.
첫째와 둘째가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시간이 유수 같고, 이렇게 살아가게 된 근본은 결혼이었기에 아내와의 인연은 운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운명이란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결정’으로 필연적이고 초인간적인 힘에 의해 사람에게 닥치는 길흉화복이라고 합니다. 통상 주변에 ‘인생은 운명으로 결정되는가, 선택으로 만들어가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어느 한쪽에 치우친 답을 듣는가 하면, 누군가는 인생은 운명이면서도 동시에 선택이라는 절충안으로 답하곤 합니다. 나 역시 인생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고, 나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차 중대장 직책을 마치기 전에 창설되는 부대에서 2차 중대장 직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해서 갑자기 부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없던 부대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임무를 받아 나는 창설 준비를 위해 먼저 소집되었던 것입니다. 몇몇 지휘관과 참모가 사전 소집되어 야전부대를 돌며 기간요원을 선발하고 자원을 충원했는데, 대대 참모 중 한 명이 나에게 내가 지휘하는 1중대에 근무할 훌륭한 병사를 선발했다고 자랑했습니다. “중대장님! 우수한 병사가 있어 면접도 보지 않고 서류상으로만 뽑았는데 가정환경도 좋고 바르고 성실하며 근무를 잘한다고 칭찬이 자자해 1중대로 보내드립니다.” 당시 그 병사는 다른 부대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하던 터에 대대 참모가 그 부대를 방문하여 선발하였고, 그는 그렇게 우리 중대에 왔습니다. 나는 중대장으로 창설되는 부대에 가게 되었고, 그는 다른 곳에서 근무하다 선발되어 우리 중대에 병사로 와서 함께 근무했습니다.
20대 중반을 지나며 ‘내 짝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큰 걱정으로 다가왔습니다. 심지어 ‘이러다 결혼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나는 결혼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일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중대장 시절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누나가 있냐는 질문을 중대원에게 던졌는데 그 질문의 대상이 지금의 처남이었습니다. 결혼할 수 있게 된 계기는 그 질문으로 출발했습니다. 놀랍게도 처남에게는 두 명의 누나가 있었고, 둘 중에 누가 괜찮으냐고 물으니, 둘째 누나가 괜찮다고 했습니다. 사진 속의 그녀는 밝고, 예쁘고, 참하면서도 활짝 웃는 모습에 좋은 사람임을 확신하며 내 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는데, 긴 기다림 속에서 그 질문으로 아내가 될 사람을 찾았습니다.
부부의 성격은 서로 반대여야 잘 맞는다고 하는데, 연애할 때 살펴본 아내의 성격은 차분하고 온순했습니다. 나는 급하고 욱하는 기질이 더러 있어 아내는 조용히 나의 부족한 점을 일깨우고 때로는 채워줬습니다. 처형은 단아한 여성상이면서도 할 말을 하는 성격이 있는 스타일이었고, 체형이 마른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만일 처남이 첫째 누나를 먼저 소개해 줬더라면 서로 비슷한 성격으로 어려웠을 테고, 또한 처형의 이상형이 마른 사람이 아니었기에 좋은 결론에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둘째 누나를 만나기란 불가능했으리라 추정됩니다. 둘째 누나를 처음 만나게 된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내는 나의 짧은 머리와 마른 체형에 적잖이 실망했고, 그때 내가 별로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처남에게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라, 아내가 나를 안 만나주면 동생에게 해코지할까 걱정되어, 아내는 그래도 몇 번은 더 만나야겠다고 결심했고, 다행히 그렇게 더 만나 서로를 알아가면서 가까워졌습니다. 중대장이었던 내가 중대원으로 처남을 만났고, 누나가 있냐는 질문을 던졌던 나의 선택은 운명을 가늠하는 다시금 중요한 출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처남이 첫째 누나가 아닌, 둘째 누나를 소개해 주었고, 중대장과 중대원의 관계는 아내를 나와 끈끈하게 연결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애틋한 연애 기간을 거쳐 만난 지 꼭 1년 후에 한평생 반려자로 서로를 맞이했습니다. 운명처럼 인연이 되어 만났고, 운명을 거스를 수도 있었지만, 선택이 또다시 연을 만들어 운명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 순간 행복을 느끼며 감사합니다.
20023년 가을 양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