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by 전우 호떡

지금까지 근무한 해가 30년이 됐습니다. 30년이 물같이 금방 흘러간 듯 느껴지지만, 그 세월 동안 인상 깊었던 추억은 한 컷 한 컷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물론 간직하고 싶었던 기억이었기에 선명하지만, 대부분은 기억하지 못하리라 생각됩니다. 아내는 어제 3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와 주었고, 기쁜 마음으로 가슴 벅찬 감동을 안고 행사에 임했습니다.

행사는 공식적인 30주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소개, 증서 수여, 소감 발표, 기념촬영 순으로 의미 있게 진행되었습니다. 공식적인 행사에 이어서 함께하는 동료들이 사무실에서 뜻깊은 축하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케이크에 초를 올려 아내와 불었고, 동료들은 박수와 환호 속에 행사를 마무리해 주었습니다. 이후에 휴가가 주어졌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아내와 점심을 먹으며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추억을 헤아리면서 맛있는 식사에 재미가 더했습니다.

아내는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맡은 일이 있어 저녁 9시 이후에 함께 했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늦게까지 영화도 한 편 보고, 웃고 떠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늦게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오랜만에 아내와 데이트를 나서는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을 열었습니다. 아침에 피곤했지만, 가볍게 일어났습니다. 사과와 떡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근교를 벗어나 1시간 남짓 거리에 공원과 호수에 다녀왔습니다. 먼저 공원을 산책하고 자연을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으며 추억을 남겼는데, 그 사진 속에 눈가의 주름은 30년 세월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근처에 맛있는 식당에서 된장찌개와 보리밥에 나물을 맛있게 비벼 점심을 먹었고, 아내는 그동안 수고한 나에게 옷을 사준다며 가게로 향했습니다. 통 크게 셔츠와 바지 각각 3벌씩 사주며 30주년을 또 한 번 기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내가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 있는 데이트라고 말했을 때 의아했습니다. 나는 우리가 이런 여유를 갖고 늘 아내와 함께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이런 정도의 데이트는 상당히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이벤트였습니다.

오늘 공원과 호수를 산책하며 처음 만나 연애하던 때에 호숫가에 자주 놀러 갔던 그때의 향수가 떠올랐습니다. 30년을 한 번에 뛰어넘는 삶은 없습니다. 순간의 과정들이 모여 지금에 이르렀고, 여유로운 삶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달려왔지만, 그 속에 여정들이 아름답고 보람 있는 어제와 오늘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쉽지 않게 지나와 생의 터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결혼하고 자식들 낳아 키우면서 자식을 향한 삶이 중심이 되었고,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책임감으로 어떻게든 해내려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힘에 부치는 버거운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처럼 긴 시간 잊지 못할 슬픔과 오랫동안 씻기지 않는 상처도 있었지만, 터널을 빠져나와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적과 같습니다. 행복의 배경에 고통이 있듯이 고통은 우리를 한 단계 더 성장시키고 종국에는 아름다움으로 연결해 주었습니다.

시름에 빠지고 회의에 젖어들었을 때 일상을 벗어나 멀리 떨어져 자연 속에서 비켜서서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멀리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숲 속의 자연처럼 나의 고민과 시련, 슬픔을 안아주고 덮어주었습니다. 당시의 원망이나 분노를 삭여 주었고, 당장의 절박한 마음을 풀어주었습니다. 현실에 얽어 매였으나, 끈을 놓지 않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담대하게 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보살핌 덕분임을 30주년을 맞이하면서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24년 2월 대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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