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밟은 운동장 위에서

by 전우 호떡

부대를 옮긴 뒤, 오랜만에 축구화를 신고 잔디로 향했다. 16년 전 몸담았던 부대, 다시 돌아온 공간이었지만 풍경은 예전과 닮으면서도 낯설었다. 세월은 흐르고, 나는 예전처럼 가볍게 달리지 못했다. 한동안 뛰지 않았던 운동장은 마치 처음 마주하는 새 구장 같아, 내 몸은 적응할 시간을 요구했다.


늘 공격수로 뛰어 왔기에 전방은 익숙한 자리였다. 하지만 첫 번째 경기에서는 잔디의 촉감과 운동장의 기류를 읽지 못해 몸이 쳐지고 움직임이 굼뜨기만 했다. 골을 넣지 못한 채 경기를 끝냈다.


운동장은 고르지 않았다. 매끈하다가도 갑자기 단단하게 느껴지는 흙바닥, 군데군데 들쭉날쭉한 잔디는 발끝의 리듬을 끊어놓았다. 운동장 앞쪽에는 관람석과 그 중앙의 사열대가 자리했고, 뒤편에는 공이 밖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울타리와 펜스가 둘러져 있었다. 앞은 탁 트여 있고 뒤는 막혀 있으니, 개방과 폐쇄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그 낯선 조화를 익히기 위해 나는 눈을 움직이고 발을 내디디며 운동장을 다시 배워야 했다.


두 번째 경기에서야 조금씩 구장이 눈에 들어왔다. 동료의 패스를 받아 수비가 비어 있는 공간에서 골키퍼와 마주한 순간, 골대 끝을 찔러 넣어 첫 골을 만들었다. 발밑의 잔디는 더 이상 낯선 적이 아니었고, 동료들과의 호흡은 서서히 하나의 흐름이 되어갔다.


세 번째 경기에서는 자신감이 들기 시작했다. 같은 팀 한분이 다가와 “오늘 패스 많이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라고 말해 주었다. 그 격려는 이상할 만큼 마음 깊숙이 닿아, 뛸 때마다 등을 받쳐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골대 앞에 서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텅 빈 골문으로 향한 슛은 허공으로 날아갔고, 조금만 발끝을 얹으면 되는 기회도 흥분한 나머지 골대 옆으로 빗겨나갔다.


방향을 잃은 공이 크로스바에 맞고 튀어나오기도 했고, 골키퍼 옆의 넓은 공간을 보면서도 그를 지나치게 의식해 공을 너무 바깥으로 차 결국 골포스트를 맞히고 말았다. “안 돼도 이렇게 안 될 수 있을까?” 전반전이 끝나자 부끄러움이 먼저 찾아왔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나를 탓하지 않았다.


후반전이 시작되자 경기의 흐름은 다시 평온하게 흘렀다. 아웃된 공을 우리 편이 던져주며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고, 짧은 패스 교환으로 수비를 흔들어놓은 뒤 가볍게 골을 넣었다. 끝나갈 무렵, 골키퍼가 쳐낸 공을 재빨리 뛰어들어 살짝 밀어 넣으며 한 골을 더 보탰다.


우리는 경기 내내 서로를 책망하지 않았다. 싫은 소리나 부정적인 말은 그 어떤 순간에도 없었다. 전반전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후반전을 시작하며 우리는 웃으며 모였고 각자의 자리에서 파이팅을 외쳤다. 사람 사이에서 부정적 마음이 읽히면 의지와 힘이 꺾이기 마련이지만, 내 동력은 끝내 꺼지지 않았다. 동료들이 나를 믿어주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의 대부분은 칭찬과 격려, 그리고 믿음에서 비롯된다. 세상에서 즐거워서 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함께 뛰는 사람들과의 믿음은 능력을 자연스레 끌어올리는 가장 강한 에너지라는 사실을, 그날 운동장에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2024년 3월 대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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