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날, 우리는 체육대회를 위해 연병장에 모였다. 지난번 축구 경기에서 무릎과 허리를 혹사한 탓에 이번에는 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대신 힘쓸 곳이라곤 목뿐이었다. 나는 마음껏 소리쳤고, 그렇게 쓰고 나니 잠든 사이 목소리는 쇠붙이처럼 거칠어져 있었다. 꽃가루 날리는 날씨는 비염의 기억까지 깨워 눈마저 빨갛게 만들었다.
스무 살 초입 어느 봄, 무리하게 목을 쓰며 몇 해를 보내다 어느 날엔가 피 한 점을 토하고서야 고음을 얻었던 적이 있었다. 젊을 때의 나는 다소 무지한 방식으로 목을 단련했고, 그 덕에 웬만해서는 목이 쉬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내 몸을 예전의 자리로 돌려놓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목은 칼날에 스친 듯 아팠고, 몸도 한결 무거웠다. 아내와 통화를 하자마자 아내는 이상한 기척을 놓치지 않았다. “목소리가 왜 그래요?” 곧이어 둘째에게도 전화가 왔다. “아빠, 목이 쉬었다며? 괜찮아?” 잠시 뜸을 들이더니 엄마 말을 빌려 한마디를 보탠다. “아빠! 엄마가 이제 철 좀 들래?”
전화기 너머로 둘째는 낄낄거렸고, 나는 그 말이 묘하게 ‘이제 나잇값 좀 하라’는 잔소리처럼 들려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저녁에는 어머니께서 전화하셨다. 늘 그렇듯, 목소리 한마디에 나의 상태를 단박에 알아채셨다. “또 무리했구나, 왜 그러니?” 체육대회에서 응원하다 그랬다고 말씀드리니, 어머니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셨다. “좋았겠다! 애들처럼 신났겠지?” 어머니의 웃음은 오래도록 이어졌고, 나도 그 웃음을 따라갔다. 그 웃음 속에 ‘앞으론 조심해야지요’라는 나의 무언의 다짐이 섞여 있음을 어머니는 느끼고 계신 듯했다.
그날 나는 목이 쉴 만큼 목청껏 외쳤다. 소리를 높이는 사이, 가슴 한구석에 굳어 있던 응어리들이 바람처럼 흩어졌다. 응원이라는 것이 참 묘했다. 마치 감정의 찌꺼기를 걸러내는 필터처럼, 쌓이고 눌렸던 것들을 대신 뱉어주었다. 감정이란, 안에서 막혀 있을 때는 흐름을 막지만, 한번 터져 나오면 다시 새로이 채워질 자리를 만들어주는 법이다. 잠시 목소리를 잃었지만, 덕분에 마음은 오히려 한결 가벼워졌다. 아마도 나는 타고나기를 감정을 밖으로 밀어내는 성향으로 태어난 모양이다. 억누르지 못하고, 숨기지 못하고, 결국엔 소리로든 웃음으로든 자연스럽게 흘려보낸다. 그 점에서 좋은 유전자를 준 부모님께 항상 감사드린다.
2024년 3월 대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