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김밥을 만들었다. 다시 표현해 게맛살과 단무지, 우엉, 햄, 달걀을 넣고 김밥을 쌌다. 지난번 아내가 김밥을 해 주려고 재료를 사놓았다가 미처 해 주지 못하고 갔는데, 냉장고에 재료가 눈에 들어와, 여유 있는 주말을 기다렸다. 아내의 설명도 듣고 요리법을 영상으로 눈여겨 시청해 따라 할 수 있었다. 김밥은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간편하게 만들어 먹는 맛있는 음식이라 도전할 엄두를 냈다.
처음에는 쌀을 씻고 밥을 안쳤고, 밥 하는 사이 달걀을 부치고 햄을 굽고 전략적으로 재료를 준비했다. 밥이 부족하면 낭패를 보기에 판단을 다시 해 김밥 10줄 분량으로 쌀을 넉넉하게 많이 안쳤다. 달걀은 편편하게 부쳐 칼로 알맞게 자르려고 했는데, 불을 세게 올려 뒤집다가 다 깨져버리고 말았다. 용기에 김과 밥, 단무지, 맛살, 햄, 달걀을 담았다. 준비를 마치고 비닐장갑을 끼고 김에 밥을 올리고 재료를 넣고 둘둘 말았다.
8시부터 준비해 마치고 보니 10시가 넘었다. 손이 가지 않는 음식이지만, 밥이 되고 난 후에 식혀야 해서 2시간 남짓 필요했다. 김밥 재료가 맞춤식으로 잘 나오니 참 편리해졌다. 세상은 수요가 있어 공급이 생기니 더 편리하고 나은 방식으로 우리 식생활도 예전에 비해 간편해졌다. 김이 서로 잘 붙도록 김 끝에 물을 적시라고 했는데,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 물보다는 밥풀을 군데군데 바르니 잘 붙었다. 마지막에 남은 재료를 모두 떨어 버릴 요량으로 모두 넣었다. 재료를 2~3개씩 넣고 밥도 많이 넣으니 너무 뚱뚱해져 말수가 없어, 결국 그 김밥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질서를 지키라는 교훈을 주었다. 하는 수 없이 비벼서 비빔밥처럼 바로 해 먹었다. 말지 못해 비빔밥으로 변신한 김밥은 그래도 김밥의 맛 그대로를 간직해 맛있었다.
김밥에 얽힌 사연은 몇 가지 있는데, 가장 특별한 의미는 첫째가 태어나 맨 처음 나에게 해 준 음식이다. 엄마가 김밥 만드는 걸 지켜보면서 배웠다고 한다. 첫째는 작년에 내가 묵은 숙소에 공부하러 와 한두 달 정도 두 번을 함께 지냈다. 첫째는 스스로 음식을 해 먹고 주말에는 내가 만들어 주었는데, 내가 김밥을 좋아한다고 하니 공부하는 시간을 쪼개어 나에게 김밥을 만들어 주었다.
언젠가 첫째가 김밥을 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첫째도 아빠의 식단을 준비하면서 보람을 찾아 좋았다고 한다. 첫째가 얼마나 야무지게 김밥을 말았는지 밥알도 쫄깃쫄깃하고, 간도 잘 배어 있고, 공기가 새지 않을 만큼 촘촘하게 말아 있는 김밥을 보며 첫째가 음식을 해 줄 정도로 컸다는 성장의 의미와 함께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준다는 것은 자신에게나 상대방에게 많은 뜻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릴 적 김밥은 소풍 갈 때나 먹을 수 있는, 평상시 먹지 않았던 귀한 음식이었다. 기차를 타고 먼 길을 갈 때 기차 안에서 팔던 김밥을 종종 사 먹었다. 소풍 갈 때 먹었던 김밥은 참 맛있었는데, 기차에서 팔던 김밥은 따뜻하지도 않고 맛도 별로였지만, 요기할 수 있는 서민의 한 끼였다. 얼마 전 동생과 분식집에 가서 김밥과 떡볶이를 맛있게 사 먹었는데, 그 시절 특별한 음식을 평상시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주말에 간혹 오는 아내는 주말을 보내고 갈 때가 될 때쯤 뭘 해 놓고 갈지 적잖이 고민한다. 갈 때가 되면 언제나 무슨 음식을 해 놓고 갈지 혼자 지내야 하는 내게 묻는다. 한 번은 김밥을 주문했는데, 많이 싸놓고 갔다. 당장 두 끼 정도는 상하지 않으니, 그냥 먹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얼렸다. 아침에 나갈 때 내놓았다가 저녁에 해동된 김밥을 프라이팬에 데워 달걀에 부쳐 먹게 되었다. 그 후로는 어쩌다 한 주 내내 먹는 별미가 되었다.
같은 음식을 일주일 내내 먹어도 질리지 않는 좋은 식성이 도움이 되어 김밥은 나의 식단에 언제인가 모르게 자리 잡았다. 한 음식만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고, 딱히 어떤 특정 음식을 어느 때 꼭 먹고 싶다는 식욕도 거의 없는 편이라 다행이다. 아내는 김밥을 준비할 때 소금, 깨와 참기름을 밥에 잘 비벼주고 재료에 시금치, 당근도 추가해 정성스럽게 싸고 있다.
아침을 먹지 않고 하루를 시작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공복의 무력한 기운이 밝고 활기찬 정서를 가두고 있는 것이다. 아침, 점심, 저녁 매끼가 모두 중요한데, 저녁에 냉동된 음식을 녹여 데워 먹으면 별로 좋지 않겠지만, 김밥의 상태가 딱딱한 고체로 변하더라도 아내의 정성이 들어간 김밥은 나에게 활력을 일으키는 영양을 제공하고 있다. 음식에 대해서는 관대함을 넘어 무심한 나를 위해 아내는 김밥 하나에도 부단히 애쓰고 있어 감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024년 3월 대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