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by 전우 호떡

중대장 시절 대대장님이 전화하셨다. 얼마 전에도 그냥 안부가 궁금하다며 연락하셨는데, 요즘은 대대장님이 안부 전화를 먼저 하시니 전화를 받으면서 죄송한 마음이 더 했다. 간단한 안부를 물어보시고는 대대장님은 내게 바쁘지 않냐고 하시며, 굉장히 미안하다며 에둘러 용건을 꺼내셨다. 이번에는 나에게 부탁하시려던 일이 있었다. 누굴 알아봐 달라는 내용이었는데, 그리 어렵지 않은 간단한 용건이었다. 그러고 보니, 대대장님은 나에게 용무가 있어서는 한 번도 연락하지 않으셨는데, 대쪽 같은 성품으로 남에게 부담 주는 일은 한사코 하지 않으려 하셨다.

대대장님과 인연은 나에게 큰 복이 되었다. 대대장님은 부족한 나를 깊이 헤아려 주셨고, 나의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친 은혜와 가르침을 주셨다. 중대장 시절 위탁교육을 보내주셔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었고, 대대장님의 배려 덕분에 중대장 시절 연애 기간을 거쳐 결혼할 수 있었다. 또한, 대대장님은 부대를 위해서 맨 앞에서 애쓰시면서 솔선수범을 보여주셨고, 나는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깨우치며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중대장 시절에는 위탁교육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요즘 세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동기 중에 누구는 지휘관에게 위탁교육을 가겠다고 보고했는데, 가지 못하게 원서를 제출하지 못하게 했다는 소문도 돌았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대대장님께 위탁교육 시험을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래, 위탁교육 가면 좋겠지. 나는 군에서 한 번도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는데, 한번 도전해 봐!” 나의 걱정과는 달리 대대장님은 흔쾌히 허락하셨다.

그런데, 위탁교육 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내가 맡은 중대장 직책을 이어서 수행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중대장 직위가 공석이 되게 된다. 대대에 중대장 한 명이 없어, 부대 운영에 무리수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나는 적잖이 우려스러웠다. 그런 부담을 대대장님은 개의치 않으시고, 부대를 위하면서도 한편으로 중대장의 개인사에 대해서도 배려해 주셨다. 결국 나는 운 좋게도 위탁교육 시험에 합격했고, 대대장님은 대대에서 다른 직책을 수행하던 인원을 후임 중대장으로 임명해 나는 부대에 미안함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중대장을 공석으로 하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위탁교육을 나갈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중대원의 소개로 그의 누나와 교제하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휴가를 내어 볼 수 있었는데, 늘 더 보고 싶고 만나고 싶었다. 휴가가 아니면 멀리 갈 수 없었는데, 나는 훈련과 부대 업무로 한 달 넘게 그녀를 만나지 못하다가 휴가도 못 가고 있던 터에 그녀와 나는 각자 생활하던 곳의 중간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부대에서 위급한 일이 생기면 즉각 달려가야 했기에 조금은 부담스러운 거리이기도 했지만, 철없는 마음이 앞섰다.

대대장님은 휴일에 목욕탕에 가더라도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대기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며 부대의 안위를 늘 생각하는 강골의 군인이셨다. 며칠을 망설이던 끝에 대대장님께 주말에 애인을 만나러 잠시 출타해도 되겠냐고 말씀드렸다. 대대장님은 어디에 가는지 묻지도 않으시고, 바로 승인해 주셨다. 자신의 곤궁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두말없이 허락해 주셨다고 생각한다. 아마 당신의 연애 시절의 모습을 늘 마음에 두고, 나를 통해 본인의 그 시절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대장님은 말과 형식에 그치지 않고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셨다. 어깨너머로 솔선수범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한다. 당시 부대를 창설한다고 몇 안 되는 기간 간부와 병사들이 부대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었다. 대대장님은 어느 순간 우리 곁에 와서 묵묵히 넉가래를 밀며 눈을 다 치울 때까지 함께 하셨다. 대대가 100킬로미터를 행군할 때 대열의 앞, 뒤를 넘나들며 시종일관 우리 옆에 계셨다.

매주 일요일이면 부대에 나오셔서 부대의 다음 주 일정과 향후 운영 등에 대해 구상하시며 뭔가 만드셨다. 운동을 좋아하셨지만, 평일에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어 운동할 엄두도 내지 못하셨는데, 일요일에 여유를 찾으면 으레 부대를 위해 누구보다도 깊이 고민하고 애쓰셨다. 한 번은 중대장들이 과제를 부여받아 발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대대장님은 하나하나 조목조목 짚어주시며 내용을 보완해 주셔서 발표가 끝나고 중대장들이 똑똑하다는 평을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 과제를 받고 막막했었는데, 대대장님은 시야에 안개를 헤치고 길을 안내하듯이 명확하게 이끌어주셨다.

언젠가 학생 때 아버지와 버스를 타고 길을 나섰는데, 아버지는 솔선수범하라고 말씀하셨다. “알겠어요! 당연히 솔선수범해야죠!” 그러나 당시에 나는 솔선수범에 대해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솔선수범을 행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천은커녕 솔선수범하기 위해서 나를 넘어서는 희생이 필요함을 알지도 못했다.

리더의 신뢰는 말로만이 아닌, 일상에서의 실천과 사례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리더의 행동은 가치와 신념의 표현이기에 사상적 토대 위에 체화된 습관으로 나타난다. 일관성 있는 가치를 지향하는 리더의 솔선수범은 조직의 분위기로 이어져 구성원은 따라 하게 되고, 조직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리더와 구성원은 공감하고 소속감과 일체감을 형성해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해 더욱 단결할 수 있다.

아이들이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우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善)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길이라고 하셨던 대대장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선명하게 남아 있다. 실행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솔선수범한다면 구성원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리라! 우리가 대대장님의 호의적인 팔로워가 되도록 노력했던 이유는 말로 표현하지 않으시고, 일상에서 부대원에 대한 사랑과 희생을 행동으로 먼저 실천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대대장님께 감동하고 자발적으로 따르면서 우리는 힘을 합쳐 부여된 임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는 말만 그럴듯하게 잘하고 그 말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고 주워 담지 못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데, 대대장님의 가르침을 새기며 나는 현재 그런 유형의 사람에 속하지 않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대대장님은 중대장의 부족함을 채워주셨고, 나의 인생에서 위탁교육을 통해 새로운 여정을 향하는 길을 인도해 주셨다. 성숙하지 않은 청년 장교의 철없음을 너그러이 살펴주시며 연애 전선에 임하는 나에게 무운을 빌며 한없이 배려해 주셨다. 당시를 회고해 보면 그때의 분별없음을 알아차리며 머리끝이 쭈뼛쭈뼛 솟는 것 같다. 100여 명의 중대원이 있는 중대를 두고 출타한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데, 나는 그때 콩깍지가 단단히 씌웠다고 하기엔 몹시 겸연쩍어진다. 대대장님의 배려 덕분에 결혼할 수 있었고, 제2의 서막을 러시아에서 열고 첫째를 러시아에서 출산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대대장님께 배려와 솔선수범을 실천하시고 부대를 위해 제일 수고해 주신 데 대하여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하며 제2의 인생을 선물해 주신 대대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지금 이 순간 대대장님의 가르침대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길 다시 다짐한다.

2024년 3월 대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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