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 포인트(사점)란 마라톤처럼 높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격렬한 운동 중, 신체가 한계에 다다라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순간을 말한다. 말 그대로 ‘죽음의 지점’이다. 그러나 그 고통을 넘어서면 몸에서는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호흡이 다시 정돈되며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시점이 찾아온다. 이를 세컨드 윈드라 부른다. 죽을 것 같은 순간을 지나 오히려 달릴 수 있게 되는, 역설적인 시간이다.
내 인생에도 데드 포인트는 여러 번 찾아왔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운동을 자주 하지 않아 그 극한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껴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육사에 입교한 뒤, 수련의 과정 속에서 죽을 만큼 힘든 순간을 숱하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참고 넘어설 때마다 세컨드 윈드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데드 포인트 이후에는 다시 숨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 순간을 견디는 일이 점점 수월해졌다. 수없이 반복된 데드 포인트와 세컨드 윈드는 나를 담금질했고,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해졌으며, 더 잘 견디고, 더 즐기며 성장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지금도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데드 포인트 하나를 떠올려 본다.
생도 1학년 때 하기 군사훈련을 마치고 2학기가 시작된 직후, 첫 번째 뜀걸음이 있었다. 당시 뜀걸음은 총기만 휴대한 단독군장과, 각종 장비를 모두 메고 뛰는 완전군장으로 나뉘어 격주로 실시되었다. 보통은 완전군장이 더 힘들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단독군장이 오히려 더 부담스러웠다. 군장이 가벼운 만큼 속도가 빨라지고, 호흡이 무너지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날 복장은 단독군장이었다. 8주간의 혹독한 군사훈련을 막 마친 직후라 체력에 대한 자신감이 차 있었고, 뜀걸음에 임하는 의지도 그만큼 강했다.
금요일 오후 일과를 마치고 연병장에 집결했다. 9월 초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유난히 무더운 날이었다. 태양은 거침없이 내려쬐었고, 아스팔트 위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출발 신호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위가 예상보다 훨씬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숨은 빠르게 가빠졌고, 방탄헬멧은 머리를 짓누르듯 무겁게 느껴졌다. 머릿속의 열기는 빠져나갈 틈 없이 갇혀 있었고, 가죽 전투화 속 발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축축했다. 출발할 때만 해도 정상 상태였던 몸은, 금세 기능을 잃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과연 끝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코스 중반에는 늘 질주해야 하는 오르막 구간이 있었다. 숨은 더욱 가빠지고 몸은 점점 조여 오는데, 눈앞에 오르막이 나타나자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악이다, 깡이다’를 외치며 구호와 함께 오르막을 질주하는 것이 당시의 관행이었지만, 그날은 구호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발을 내디뎠다. 다행히 오르막을 넘은 뒤에는 잠시 속도를 늦추고 숨을 고를 시간이 주어졌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고, 모두가 한계에 다다라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크게 두 바퀴 도는 코스 중, 이제 한 바퀴를 마쳤다. 남은 한 바퀴가 주는 압박감이 무겁게 몰려왔다. 다리는 마치 천 근의 무게를 단 듯 들리지 않았고, 한 발짝을 옮길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따라왔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 호흡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조건이 나를 옥죄고 있었다. 이대로 멈추면 대열에서 이탈하게 된다. 대열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멈추면 그 즉시 낙오가 된다.
지금까지 달려온 만큼, 앞으로도 같은 거리가 남아 있었다. 결국 의지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절대 멈추지 않겠다고. 왜 멈출 수 없는지, 왜 지금 이 순간에도 대열에 남아 있어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되묻고 또 되물었다.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늘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시던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버티면 된다. 고통은 영원하지 않다. 조금만 참으면 끝난다.”
이를 악물고 다시 달렸다. 군가를 부르려 했지만, 숨을 아끼기에도 벅찼다. 결국 끝까지 군가를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함께 뛰던 동기들에게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다.
출발선이자 목표 지점이 눈앞에 다가오던 순간이었다. 도착을 불과 몇백 미터 앞두고 한 명이 쓰러졌다. 그는 달리던 중 의식을 잃고 그대로 쓰러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실신 당시 동공만 희게 드러날 정도로 끝까지 사력을 다해 뛰다가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그는 아마도 전우를 위해 군가 역시 끝까지, 있는 힘껏 불렀을 것이다.
나는 데드 포인트에서 ‘쓰러질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지했고, 스스로를 보호하며 한계를 조절했다. 끝까지 가기는 했지만, 모든 것을 걸지는 못했다. 반면 그는 자신의 한계를 계산하지 않았다. 자신의 몸보다 동료와 대열을 먼저 생각하며, 혼을 다해 데드 포인트를 넘어서려 했다. 그는 단순히 달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었다.
극한을 넘어설 때, 인간은 현재의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고, 더 큰 고통을 감당할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나는 겨우 감당할 만큼만 버텼지만, 그는 자신과 함께한 동료들을 위해 끝까지 자신을 던졌다. 그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나에게 평생 따라가야 할 하나의 이정표를 남겼다. 지금도 나는, 그날의 그 동기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2023년 11월 양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