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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 사람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인품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말의 내용이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결국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결과는 달라진다. 아내는 평소 내 말투가 귀에 거슬린다며, 대인관계에서 실수가 없도록 여러 차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나 자신을 잘 모른다며, 부족한 지점을 짚어 주고 진정 어린 자극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일깨워 주곤 한다.
나는 언행으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성격이라는 것이 쉽게 바뀌지 않는 만큼, 지속적인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에는 늘 엷은 걱정이 배어 있다.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외출했다가 식당 앞에서 아내를 먼저 내려주고 나는 짐을 정리하러 집으로 향했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차 열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카페에서 먼저 차에 가 있겠다는 아내에게 열쇠를 건네주었고, 그 뒤로 다시 돌려받지 못한 것이다. 서로의 깜빡임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열쇠가 어디 있는지 물었고, 아내는 차분한 목소리로 내가 지금 어디쯤 왔는지를 되물었다.
그 순간 나는 ‘이런 일은 실수하지 말아야지’라며, 열쇠를 돌려주지 않은 아내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말해 버렸다. 나도 모르게 말끝에는 알파벳 I와 C의 발음까지 실렸다. 아내는 열쇠가 없으면 시동이 꺼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나는 일단 꺼 보고 생각하자고 했다. 결국 집에 도착하자 시동은 꺼지지 않았고,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다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대책을 상의했다.
아내는 서로 출발해 걸어서 중간 지점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면 이삼십 분은 족히 걸린다며, 아는 사람에게 열쇠를 가져다 달라 부탁하자고 제안했다. 생각은 팽팽히 갈렸고, 언쟁이 붙었다.
그러나 아내가 실망한 지점은 의견의 차이가 아니었다. 나의 말투와 태도였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 아내의 마음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짧은 정적 끝에 아내는 조곤조곤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그렇게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도, 여전히 다급한 순간에 이성을 잃고 남에게 책임을 돌리는 내 태도에 또다시 놀랐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되짚어 들려주었다. 실제로 내가 한 말이 분명했지만, 나는 애써 “설마 내가 그렇게 말했냐”라고 되물었다. 진정성이 없다는 걸 알리기 위한 방어였을 것이다.
이쯤이면 꼬리를 내리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최선이다. 아내가 더 격앙되지 않도록 화제를 돌리려 애썼지만, 아내는 나의 얄팍한 시도를 곧바로 간파했다. 다른 이야기로 피해 가지 말라며 못 박았다. 그때부터 시간은 유독 더디게 흘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말했다. 늘 말뿐이라는 아내의 타박은 더욱 거세졌다. 결국 잘못을 인정하고 잠자코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식사가 나왔을 때 아내는 “그래도 밥은 먹어야죠”라며 웃었고, 그제야 긴 설교가 끝났다.
돌이켜보면, 차 열쇠가 없음을 알아챘을 때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해결책을 상의했어야 했다. 화를 낼 일이 아니었다. 이미 지나간 일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거기에 I와 C 발음까지 보탰으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는 일이 벌어진 뒤 ‘앞으로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기보다, ‘왜 이렇게 됐을까’를 따지는 데 더 익숙한 사람이다. 넘어졌다면 일어나는 방법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나는 이유부터 한탄하고 있었던 셈이다.
아내는 오늘도 자극을 통해 내가 앞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짚어 주었다. 내가 불편함이나 불쾌함을 주지 않도록 애써 온 아내의 수고가 고맙고, 곁에서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어 주는 그 태도에 감사할 따름이다. 습관은 강한 위기의식과 지속적인 자극 속에서야 비로소 고쳐진다고 한다. 이제는 아내의 자극 때문이 아니라,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스스로를 자극하며 달라져야 한다.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며!
2023년 11월 양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