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의 수능시험이 있던 날, 나는 하루 휴가를 냈다. 고사장으로 향하는 길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긴 시간 도서관에서 홀로 공부하던 아이가 어느새 한 해의 결실을 맺으러 시험장으로 향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묘하게 흔들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지난 몇 달 동안 첫째와 함께 지냈던 풍경이 잔잔히 떠올랐다. 해 저무는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혼자였다면 쓸쓸했을 시간들을 아이가 옆에서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퇴근 후 함께 먹던 저녁, 특별할 것 없는 대화 속에서도 배어 나오던 웃음. 그 소소한 일상이 생각보다 큰 의미였음을, 아이가 떠난 뒤 빈자리를 마주하고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나 온종일 책상 앞에 붙어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은 늘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했다.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밤 열한 시까지, 밥을 먹는 시간과 잠깐의 휴식 외에는 오직 공부에만 매달리던 날들. 주말마다 홀로 시간을 재며 모의고사를 풀던 모습은 대견했지만, 그만큼 애틋했다.
문제 풀이가 막혀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날도 있었다. “울지 말아라, 울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식의, 그때는 옳다고 믿었던 조언을 쏟아냈지만, 그것이 아이에게는 상처였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아이에게 필요했던 건 조언이 아니라 잠시 기대어 울 수 있는 품이었다. 잠시 후 “아빠, 나 괜찮겠지?”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건네던 말에 비로소 마음이 저렸다. 그래서 말의 온도를 낮추고, 아이가 감당하는 속도에 맞춰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수능 전날에는 오지 말라고도 했다. 평소와 다른 상황이 생기면 컨디션이 흔들릴까 걱정된다는 말에, 나는 한 발 물러남으로써 응원하기로 했다. 시험이 끝난 날, 고사장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며 수험생과 부모가 서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다투는 모습을 보았다. 또 홀로 울며 걸어가는 학생도 있었다. 수능이라는 이름 아래, 이토록 많은 마음이 흔들리고 떨리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한없이 무겁게 했다.
잠시 뒤, 정문 앞에 나타난 첫째는 밝고 씩씩했다. 나를 보자 환하게 웃는 얼굴이 그 하루를 견뎌낸 증표 같았다. 나는 조용히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차 안에서는 둘째가 반가운 표정으로 언니를 맞았고, 첫째는 자리에 앉자마자 차분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시험이 잘 끝났다고 말했다.
1년의 시간. 첫째에게는 치열한 한 해였고, 아내에게는 곁에서 함께한 거의 1년이었다. 나에게는 여름과 가을을 함께 보낸 몇 달의 소중한 기록이 되었다. 어릴 적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믿었는데, 어느새 한 해를 꿋꿋이 견뎌낸 한 사람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자랑스러움과 뭉클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수능은 인생의 중요한 관문이지만, 결국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잘된다고 해서 계속 잘되는 것도 아니고,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해서 인생이 꺾이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삶은 한순간의 결과보다 성실과 근면이 쌓아 올린 긴 여정에서 비로소 빛을 발한다.
이제 첫째는 곧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 세상살이의 관계는 복잡하고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의미를 찾고, 기쁨을 발견하며, 때로는 무거운 짐조차 감내할 힘을 얻길 바란다. 오늘 수능을 마친 모든 수험생에게 조심스레 응원을 보낸다. 결과를 떠나, 진실과 성실의 옷을 입고 담대하게 자기 길을 걸어가기를. 그 모든 걸음 위에 기쁨과 행복이 늘 함께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2023년 11월 동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