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처가에 다녀오며 수필과 시를 모아 한 권의 책처럼 엮어 장모님께 드렸다. 얇은 종이 위에 지나온 시간과 마음을 얹어 조심스레 건네는 순간, 옆에서 아내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 여기 시도 있는데 너무 유치해요!” 웃음을 참지 못한 채 던진 말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감동했다는 말이나 칭찬이 이어질 줄 알았기에 뜻밖이었고, 순간적으로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곧 나도 웃음이 났다. 내가 읽어도 다소 오글거리는 구석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의 솔직한 평은 마음을 상하게 하기보다 오히려 글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돌이켜 보면, 나는 가까운 이들이 건네준 소감들을 자양분 삼아 여기까지 글을 써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한 선배님의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손 편지였다. 선배님께 내 글 몇 편을 모아 드렸고, 그 글이 다시 어머니의 손에 닿아 돌아왔다. 여든을 훌쩍 넘긴 연세임에도 필체는 힘이 있었고, 문장마다 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종이 위를 타고 사랑과 평안의 기운이 전해졌고, 나는 편지를 읽다 말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참으로 온몸과 온 마음으로 살아오신 님께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는 탄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행복의 보금자리인 가정과 가족에 대한 진지한 사랑과 배려와 노력, 국토방위의 거룩한 사명을 완수하느라 혼신의 노력을 바치시는 늠름한 자세! 또한, 그 무엇보다도 자연과 사람과 자기 자신을 아끼고 성숙시키느라 깨어 있는 숙연한 모습!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합니다. 그동안 달려오신 발자취에서 아들의 발자취를 흠칫 재발견하고 그 어미로서 형언할 수 없이 감개무량했습니다. 님께 주님의 사랑과 평화와 기쁨이 넘치기를 늘 빌겠습니다.” 행복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 이렇게 깊이 이어지는 관계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쓴 부족한 글에 과분한 마음을 담아 주셨다는 사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소감은 평소 흠모하던 선배님에게서 받은 메시지였다. 늘 정성스럽게 삶을 가꾸며 중요한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되어 주셨던 분이다. “수필을 다 읽고 나니 지나온 시간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는 말과 함께, 진솔한 글 앞에서는 거짓된 감정마저 조심하게 된다는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짧은 메시지 안에서 사람을 대하는 넉넉한 태도와,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선배님의 삶의 자세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칭찬과 더불어 조언을 곁들인 이색적인 소감도 있었다. “중년이 되면 잘하는 걸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글쓰기는 좋은데, 달리기는 적당히 하라”는 말이었다. 가족과 관계, 그리고 달리기를 주제로 한 글이 많다 보니 나온 당부였을 것이다. 가까운 사이에서만 건넬 수 있는 말이었고,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마음에 와닿는 조언은 그냥 흘려보낼 수 없기에, 나는 지금도 그 말을 떠올리며 속도를 조절한다.
어머니의 소감은 또 달랐다. “엄마 얘기는 거의 없고, 네 각시 얘기만 있더라.”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아들을 한 사람의 가장으로 온전히 떠나보냈음을 받아들이는 마음과, 그럼에도 기쁘게 읽었다는 응원이 함께 담겨 있는 듯했다. 나는 그 말을 어머니에 대한 주제를 쓰라는 당부가 아닌, 어미는 재미있게 읽었으니, 글쓰기에 더 정진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요즘은 책과 조금 멀어진 시대라서 인지, 내가 쓴 글을 건네고도 별다른 반응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한 번은 글을 건네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펼쳐 읽는 이를 만난 적이 있다. 그의 태도는 나에게 묘한 호감을 안겨 주었다. 즉석에서 건네진 칭찬과 반응은 충분히 나를 고무시켰고, 그날의 호감은 지금까지도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가 쓴 글이 내 삶을 완벽하게,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무심코 덧칠한 표현이 다른 색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바탕만큼은 사실에 기대어 있다. 글은 나로 하여금 지나온 시간을 낙관적인 어조로 다시 바라보게 하고, 아름다운 기억은 더 풍요롭게, 아픈 기억마저도 나의 역사로 받아들이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가 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공감하고, 마음 한쪽에서 조용한 울림을 느끼기를 바라게 되었다. 병원에 다니던 시절, 간호사 한 분께 수필을 전했는데 어머니에 대한 글을 읽고 눈물이 났다며 고맙다는 말을 전해 왔다. 모든 독자에게 같은 반응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내 문장 한 줄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잠시 머물 수 있다면, 그 기대만으로도 나는 다시 펜을 든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쓴다. 쓰면서 나를 발견하고, 쓰면서 스스로를 단단하게 한다. 누군가를 향해 건넨 문장이 결국은 나를 다시 살게 하고 있음을, 조용히 받아들이며.
2024년 6월 대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