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구기 종목을 자주 했더니 무릎이 안 좋아졌다. 완전히 굽혔다 폈다 할 수 없을 만큼 무릎에 통증이 생겼다. 이제는 무릎관절을 많이 사용하거나 급하게 방향을 전환하면서 관절에 무리 가는 운동은 당분간 삼가기로 했다. 그러나 달리기만은 무릎 통증이 있더라도 계속하고 싶다. 무엇보다 땀을 배출하면서 가슴속의 응어리를 덜어내고, 제자리에 안주하는 무력감을 떨쳐내기 위해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활력을 갖고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생의 고비가 찾아올 때 버티고 이겨내는 힘이 필요하다. 달리는 이유는 근본적으로는 에너지를 쏟으면서 다시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이다.
달리기를 잘하는 이유는 자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달리는 문화 속에서 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고, 그로 인해 자주 하면서 습관적으로 달렸던 것 같다. 문화란 오랜 기간 축적된 생활양식으로 조직에서 자연히 연출되는 환경과 분위기라고도 볼 수 있다. 조직에서 삶의 양식을 습득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사람이 바뀌더라도 그 양식은 끊기지 않고 유지된다. 조직의 양식을 따르지 않으면 조직에 더 이상 있기 어렵기 때문에, 달릴 수밖에 없게 되는 자연스러운 동력이 되었다. 그러면서 저절로 달리게 되었고, 절로 하니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어느 특정 기간을 두고는 달리지 못한 사연이 있었지만, 달리기에 대한 근간은 흔들리지 않아 달리기에 대한 의지는 지금도 실천되고 있다.
달릴 때는 가급적 새로운 코스를 개발하고, 이후에 몇 번 뛰다가 코스를 조금 알았다 싶으면 이내 다른 코스를 또 찾게 된다. 코스가 없을 때는 시작과 끝을 반대 방향으로 정해 돌아오는 코스도 즐긴다. 차로 달릴 때 조수석에서는 지나치듯 보지만, 운전석에서는 유심히 관찰하듯이, 달리면서 행위의 주체로서 지내보지 않고 제대로 지켜보게 된다. 또한, 달릴 때 세심히 보더라도 한 방향에서만 보면 놓칠 수 있지만, 다른 방향으로 달릴 때 이전에 못 보던 곳도 볼 수 있다.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달리는 행위는 주체적인 삶을 이끌고, 한편으로 나의 관점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주어, 좀 더 겸손해지도록 일깨우고 있다.
달리기는 기계적으로 펌프질하듯이 도약과 착지의 연속 동작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멈추지 않는 과정’으로 양쪽 발이 동시에 대지와 맞닿아 있지 않다. 한쪽 발은 대지와 붙어 있지만, 한쪽 발은 떨어져 있다. 나는 달리면서 ‘칙칙폭폭 달리는 기관차’가 된 듯, 앞으로 나아가는 지속성에 늘 감탄하고 있다. 한 번 멈춤을 지향하는 달리기는 지속성이 끝나는 시점에 완성된다. 달리면서 서로 다른 시간에서 ‘달리는 동작’과 ‘멈춤’은 물리적으로는 완전히 구분되지만, 멈춤이라는 끝을 향해 시작하는 달리는 동작과 시작의 끝에 있는 멈춤은 일관성으로 연결되고 있다. 달리면서 같은 행위로 앞으로 나아가는 일관성을 지켜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일관성이 없으면 끝낼 수 없다. 계속 달리면서 시작과 끝을 연결하기 위해 같은 동작을 유지하는 꾸준함 속에서 성실함을 또한 배우고 있다.
달리는 과정은 힘들고 어렵지만, 달리고 나면 무언가 성취한 듯한 보람을 느낀다. 달리면서 고통이 주어지면, 고통을 이겨내는 데 대한 복이 찾아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속담과 같이, “가장 어두운 밤도 끝나고 해는 떠오를 것이다”라고 한 빅토르 위고의 명언처럼 어려움을 극복하거나 고된 일을 겪은 뒤에는 반드시 즐겁고 좋은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기쁨과 슬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균형되는 인생의 총량에서 현재의 고통과 고난은 미래의 행복과 기쁨을 전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비록 지금 당장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는 이겨낼 수 있는 자신과 용기가 있고, 나아가 이겨냄으로써 성장한다. 계속 달리면서 가슴속에 ‘미래, 행복, 기쁨, 성장’의 가치와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잊지 않게 됨은 실로 큰 축복이다.
2023년 여름 양주 남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