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연애하던 때의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외양뿐만 아니라 말씨, 마음씨 어느 하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는 내게는 변치 않은 듯 처음 만날 때 모습 그대로입니다. 유심히 보아도 세월이 흐른 변화를 나는 감지하지 못합니다. 첫째가 스물이 되었으니 결혼한 지 스무 해가 지났습니다. “아내와 늘 같이 있어 아내의 변화를 느끼지 못해서일까! 아내를 너무나 사랑해서 마냥 좋아서 그런가?” 아내의 흰머리를 제외하고는 나는 아내의 나이 듦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자녀에게 늘 자상하고, 뭐든지 받아주는 포용력을 갖고 있습니다. 아내는 차분하게 천천히 조곤조곤 말합니다. 대화할 때 말꼬리를 올리며 격앙되지 않습니다. 첫째는 예민하고 급한 편이라 어릴 때 뭔가 하려다 잘 안되면 바로 짜증을 내며 안 하려 했는데, 아내는 그런 첫째의 이름을 부르며 “할 수 있어!”라며 응원해 줬습니다. 첫째가 징징거리며 울면 옆에서 이름을 부르며 연신 할 수 있다고 격려했습니다. 아내의 응원은 멜로디처럼 잠자리에 들 때나 가만히 생각할 때 귓가에 맴돌았고, 나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아내가 첫째를 돌보던 가장 인상 깊은 기억은 아주 어릴 때 친가에 갔을 때였습니다. 아버지께 손주의 재롱을 보여주고 싶었던 아내는 첫째에게 어린이집에서 배운 것을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언제 배웠는지 모르지만, 첫째와 마주 보고, 첫째에게 율동을 따라 하라고 열심히 보여줬습니다. 첫째는 엄마를 짐짓 열심히 보더니 잠시 후 한 마디로 ‘싫어’하며 돌아섰습니다. 아내는 ‘아 잉’ 한 마디 하며 멋쩍어했으나, 이내 호탕하게 웃으며 상황을 일단락 지었습니다. 그 모습 속에 아내의 어진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께 손주의 사랑을 최고의 선물로 보여드리려는 아내의 효심이었습니다. 아내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함으로 내 가슴은 뭉클해졌습니다.
연애할 때 아내는 오롯이 나를 바라보았으며, 가족의 일원으로서 아버지와 어머니께 살갑게 다가갔습니다. 무뚝뚝한 아들을 대신해 딸처럼 부모님의 동무 역할을 하려 애썼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격이 있는 말씨와 행실이 어진 며느리를 이뻐하셨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후에 아버지는 나에게 ‘며느리가 천생 여자’라며 참 곱다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경륜을 가진 부모님의 사람됨을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아름다움과 안식의 풍요로움을 주는 은혜로운 사람입니다. 언제나 아내에게 반해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아내에 대한 고마움, 아내를 향한 그리움, 아내에게 더 잘해야지 하는 다짐이 교차되면서 감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음은 아내의 사랑 덕분입니다.
2024년 봄 대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