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의 나른한 오후, 밀려오는 피곤함에 잠깐 눈을 붙였다. 잠시였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눈을 뜨고 보니 꽤 긴 시간이 흘러 있었다. 주중의 일과 속에서 켜켜이 쌓인 피로가 평온한 휴일을 만나 한꺼번에 몸을 눕힌 듯했다.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 보면, 문득 스무 살 초반 가장 여유롭지 못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육사에서 보낸 4년, 그중에서도 가장 고단했던 1학년의 기억이다.
1학년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지 못할 일화들이 여럿 떠오른다. 수업 시간에 졸았다며 지적을 받았고, 불침번 근무 중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제때 교대를 하지 못했다. 화장실에서 잠깐 숨을 돌리려다 한 시간을 훌쩍 보내버린 적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늘 피곤했고, 피곤함은 나도 모르게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생도 시절은 일반 학기와 군사훈련 기간으로 나뉜다. 일반 학기에는 학과 수업과 무도, 체육 수업이 이어졌고, 일과는 아침 점호로 시작해 저녁 점호로 끝났다. 학과 수업이 끝난 뒤에도 오후마다 태권도나 체육 활동이 빠짐없이 이어졌다. 스무 살의 나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의욕은 넘쳤지만, 주어진 일정을 감당하기에는 체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의지는 있었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생도 1학년은 체력적으로 적응하는 시기였고, 그 적응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처럼 무거웠다.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은 마음과 싸우는 시간은 그 자체로 전투였다. 잠을 이겨내려다 망설이면 오히려 더 힘들어졌기에, 밀려오는 졸음을 단박에 끊어내고 몸을 일으켜야 했다. 침구를 정리하고 점호에 늦지 않기 위해 세수도 못 한 채 얼굴에 기름기를 머금고 집합했다. 점호를 마치고 나서야 세면대 앞에 줄을 서 씻고, 다시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 아침 식사와 청소를 마친 뒤, 생도들은 무리를 지어 행진하며 교수부로 향했다.
긴장 속에 시작된 하루는 교수부에 도착해서야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같은 학년만 사용하는 교실에 들어서면 비로소 마음이 풀렸다. 나는 책상에 엎드린 채 잠깐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으려 애썼다. 그러나 아침부터 쌓인 피로는 쉽게 가시지 않았고, 수업 시간이 다가오면 다시 정신을 추슬러야 했다. 고등학생 시절 쉬는 시간 10분을 쪼개 5분은 책상에 엎드려 자고, 나머지 5분에 화장실을 다녀오던 기억이 그때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피로는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다. 조금만 더 움직이거나 야외 활동을 하면 쓰러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좌변기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려다,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떴을 때는 몸이 놀랄 만큼 개운했다. 단 몇 분 잔 것 같았는데,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흘러 있었다.
학년 초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졸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나는 분명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당황했다. 용기를 내어 졸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상대는 분명 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결국 옳은 쪽은 분명했다. 나는 졸지 않으려 애썼지만, 무의식 중에 잠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1, 2학년 생도에게는 불침번 근무가 주어졌다. 2학년이 근무의 시작과 끝을 맡고, 1학년은 그 사이 시간을 책임졌다. 여름 어느 날, 전번 근무자가 나를 깨우며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는 분명 나를 깨웠고, 내가 침대에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갔다고 했다. 그러나 교대 시간이 다 되어도 내가 나타나지 않아 다시 와 보니, 나는 또다시 깊이 잠들어 있었다. 하늘에 맹세코, 그를 본 기억도, 내가 일어나 앉았던 기억도 전혀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늘 기절 직전의 상태로 하루를 버텼다. 눈두덩은 항상 부어 있었고, 쉰 목소리는 1학년 내내 돌아오지 않았다. 몸무게는 64킬로그램에서 좀처럼 늘지 않았고, 규칙적인 일과와 훈련은 몸에 살이 붙을 틈을 주지 않았다. 잠결에 몸을 부르르 떨며 스스로의 몸부림에 놀라 깬 적도 적지 않았다.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육사를 졸업한 한 교수님의 무용담을 들었다. 생도 시절 축구 선수였던 그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도 밤 10시까지 온몸과 정신을 다해 집중했고, 정각이 되면 반드시 잠자리에 들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10시 이전에는 졸지 않았고, 10시 이후에는 깨어 있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 1시, 모두가 외출과 외박을 나갈 때면 그는 빈 생도대에 남아 곧장 잠들어 일요일 저녁까지 꼬박 잠을 잤다고 했다. 수면으로 피로를 관리하며 4년을 버텨냈고, 그 삶의 태도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스무 살의 고단한 수련에 적응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종종 주변에 폐를 끼쳤다. 수업 시간에 졸지 않으려 이성적으로는 노력했지만, 체력은 그 의지를 따라주지 못했다. 불침번 근무에서도 동료에게 피해를 주었다. 그러던 중 들은 교수님의 이야기는 나에게 하나의 원칙으로 남았다. 피곤함은 멈춰야 할 이유가 아니라,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스무 살의 변화는 결코 쉽지 않았고, 적응에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시간을 견디며 나는 조금씩 성장했다. 그 시절의 웃지 못할 일화들은 이제 부끄러움이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만든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잠들 수밖에 없었던 스무 살의 나는, 그렇게 오늘의 나를 지나오게 했다.
2023년 10월 양주에서
'밑거름'에서 다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