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선배님께 전화드렸다.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 문득 그분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특별한 용건은 없었다. 그저 잘 지내고 계신지, 요즘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계신지 알고 싶었다.
“어쩐 일이냐”는 물음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별일은 없어요. 그냥 안부가 궁금해서요.”
선배님은 잠시 웃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일이 없을 때 전화하는 게 진짜 안부 전화지.”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목적이 없는 연락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지, 아니면 목적이 없다는 이유로 서로를 경계하며 거리를 두는지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사심 없이 안부를 묻는 관계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나는 그런 사람을 겨우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한 번은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상대의 목소리는 반갑기보다는 조심스러웠고, 왜 전화했는지를 묻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의 연락이 낯설었을 수도 있고, 그의 하루가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관계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나는 그 이후로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지금도 손에 꼽을 만큼 가까이 마음을 나누는 선배님과의 인연을 떠올려 본다. 학창 시절에는 서로를 알 기회가 없었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교차하지 않는 선처럼 각자의 시간을 지나쳤다. 졸업 후, 한 교육과정에서 단 한 번 함께한 것이 전부였다. 그 짧은 만남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선배님은 언제나 넉넉했다. 사람을 대할 때 서두르지 않았고, 웃음을 아끼지 않았다. 그 태도는 말보다 먼저 상대에게 닿았다. 한 번은 토의가 끝난 뒤 선배님이 나를 조용히 불러 세우셨다. 토의 중에 내가 누군가의 의견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던 장면을 떠올리며, 표현의 방식에 대해 조언해 주셨다.
“의견은 좋았는데, 단번에 반박하면 상대는 얼마나 난처하겠니?”
질책이 아니라 질문이었고, 지적이 아니라 배려였다. 그 말은 내 안에 오래 남아, 이후 사람의 말을 듣는 태도를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몇 해 전, 변두리 같은 자리에서 머뭇거리던 시절에도 선배님은 나를 흔쾌히 맞아주셨다. 저녁을 함께하고, 진한 커피를 앞에 두고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던 때라, 그 만남은 더욱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았다. 당시 정리해 두었던 글을 보여드리자, 선배님은 그것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자료로 받아들여 주셨다. 내가 아닌 글의 쓸모를 먼저 보아주신 그 시선이 고마웠다.
인생의 방향을 정해야 했던 갈림길에서도 선배님을 찾았다. 머무를지, 움직일지 결정하지 못한 채 망설이던 나에게 선배님은 단순하게 말씀하셨다.
“지금 움직이면 시간이 걸려도 기회는 온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기회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선택은 나의 몫이었다. 나는 움직이기로 했고, 다행히 한 번의 기회를 만날 수 있었다. 그 결과보다도, 누군가가 나의 가능성을 전제로 조언해 주었다는 사실이 오래 힘이 되었다.
1년 전, 업무로 선배님을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변하지 않은 미소와 태도는 그 자체로 안부의 대답 같았다. 나는 그동안 써 온 글을 묶은 수필집을 건넸다. 며칠 뒤 선배님은 긴 소감을 보내주셨다.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그 시간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정성은 늘 이렇게, 말보다 먼저 마음을 드러낸다.
돌아보면, 나는 선배님에게서 삶의 기술보다 태도를 배웠다. 정성으로 일관하는 자세, 사람을 대할 때 한 박자 늦추는 여유, 내미는 손을 쉽게 외면하지 않는 마음. 그런 태도는 관계를 오래 살게 한다. 오늘, 안부 전화를 끊고 한동안 그 여운 속에 머물렀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특별한 이유 없이도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는 사람, 안부를 묻는 마음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으로.
2024년 4월 대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