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에 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에만 집중한 탓에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사관학교에서는 체육과 무도, 군사훈련을 통해 공부와 운동을 병행해야 했다. 인간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수 있지만, 그에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단기간에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받았다. 때로는 ‘야성을 기른다’는 명분 아래 무리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사관학교의 교육은 개인의 한계를 고려해 점진적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단체정신과 협동심을 강조했고, 그 덕분에 개인의 어둠은 공동체의 빛 속에서 극복될 수 있었다.
1학년 시절, 교실 정리 정돈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처음 얼차려를 받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수업 중 순찰하던 선배 생도가 교실에 들어와 정리 상태를 지적한 뒤 아무 말 없이 나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교실에 있던 동기들 모두는 곧 책임이 따르리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일과 후, 방송을 통해 해당 교실을 사용한 생도들은 지정된 시간과 복장으로 집결하라는 통제를 받았다. 선배들은 훈육의 일환으로 육체적 고통을 부여했는데, 이는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반성과 체력 단련을 동시에 요구하는 과정이었다.
약속된 시간에 우리는 완전군장을 메고 연병장에 집결했다. 계획된 얼차려였고, 당시 순찰자였던 선배 역시 완전군장을 메고 사열대에서 통제했다. ‘기합을 받는 이유’에 대한 긴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열 바퀴를 뛴다는 말만은 또렷이 남았다. 한 바퀴만으로도 숨이 가쁠 정도로 힘에 부쳤고, 더는 뛰기 어렵다고 느낄 즈음 선배가 대열을 멈춰 세웠다. 잠시 안도했지만, 이유는 예상과 달랐다.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곧이어 선배는 “2학년 생도의 위대함을 보여주겠다”며 2학년 생도들을 선두에 세웠다. 출발과 동시에 속도는 급격히 빨라졌고, ‘이번에는 정말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사적으로 따라가던 중 완전군장의 끈이 풀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끈을 손으로 붙잡고 달리던 순간, 옆에서 “빨리 나와!”라는 외침이 들렸다. 3학년 생도였다. 그는 나를 대열에서 이탈시키더니 군장을 다시 정비해 주었다.
연병장 가장자리에서 어깨와 허리를 잇는 끈을 단단히 결속한 뒤, 선배의 도움으로 다시 군장을 멨다. 앞서 달리던 대열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다시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우리는 후미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얼차려가 끝날 때까지 책임을 다할 수 있었다.
만약 그 선배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대열에서 완전히 뒤처졌을 것이고, 얼차려의 목적이었던 책임 또한 완수하지 못했을 것이다. 3학년 생도였기에 체력이 월등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역시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다만 같은 길을 먼저 걸어온 선배로서 나의 처지를 이해했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을 뿐이다. 그는 개인의 역할을 넘어 공동체의 임무 완수를 위해 자신의 몫을 기꺼이 감당했다.
나는 언제나 조직 속에서 살아왔다. 공동운명체로서 구성원의 도움을 받으며 버거운 순간을 넘겼고,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연대의 힘을 배웠다. 공동체가 위기를 향해 단결할 때, 이루지 못할 일은 없음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1학년 시절 위기의 순간에 손을 내밀어 주었던 그 선배를 기억하며, 이제는 내가 먼저 함께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2023년 7월 양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