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아침, 오랜만에 풋살 경기를 즐겼다.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세 쿼터를 뛰었다. 쿼터마다 짧은 휴식이 있었지만, 모두 합치면 한 시간 반이 훌쩍 넘는 시간이었다. 골도 넣고 웃으며 뛰다 보니 몸의 한계를 잠시 잊고 있었다. 마지막 쿼터, 앞으로 굴러가는 공을 놓치고 싶지 않아 순간적으로 질주했다. 그때 왼쪽 허벅지에서 이상한 신호가 왔다. 근육이 땅기며 통증이 스쳤다.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뛰었다.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허벅지를 주먹으로 몇 번 두드리며 계속 경기를 이어갔다. 경기가 끝나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벅지는 욱신거렸고, 몸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던 듯했다.
하루가 지나자 통증은 분명해졌다. 허벅지는 닿기만 해도 아팠고, 열이 올랐다. 피멍이 번져 있었고, 걷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돌아보면 나는 늘 그렇게 다쳤다. 누구와 부딪혀서가 아니라, 혼자서. 의지를 앞세워 몸을 몰아붙이다가, 결국 몸이 먼저 무너졌다.
2014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축구를 하러 나섰다가 처음으로 햄스트링을 다쳤다. 골을 향한 집념이 능력을 앞질렀고,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2016년에는 공을 찬다는 것이 허공을 향한 발길질이 되었고, 그날 이후 한동안 제대로 걷지 못했다. 2023년에는 테니스를 치다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었고, 회복을 기다리지 못한 성급함은 다시 허리를 다치게 했다. 그해 나는 총 석 달을 뛰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운동장에 섰다. 몸이 괜찮은 것 같다는 막연한 확신, 아직 할 수 있다는 착각이 나를 다시 뛰게 했다. 운동의 주체는 나 자신인데, 그 책임 또한 온전히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인정하게 된다. 나이를 생각해 몸의 변화를 직시했어야 했고, 젊음을 증명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았어야 했다. 하지만 뛰는 순간만큼은 그 모든 것을 잊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는 것은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이번에도 다쳤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아내는 이미 아이들을 돌보며 충분히 애쓰고 있는데, 나까지 보살피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는 일이 가족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동생의 잔소리도 떠오른다. 무릎 수술을 겪은 동생은 축구화부터 버리라고 말한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과격한 운동은 이제 그만하라고, 수술대에 오르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한다.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기에 그 목소리는 쉽게 흘려보낼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감사한 이유는 분명하다. 나의 건강을 나보다 더 걱정해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의 건강이야말로 행복의 가장 첫 번째 조건임을 다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통증이 남긴 것은 단순한 부상이 아니라, 삶의 속도를 다시 조절하라는 조용한 신호일지도 모른다.
2024년 2월 대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