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는 친구

by 전우 호떡

무더위가 계속되는 요즈음, 습기 없는 뜨거운 볕 아래서 살갗은 금세 달아오른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때면 잊고 지냈던 사람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며 깊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런 와중에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1년 전에 만났을 때 내가 연락했으니, 벌써 1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마음에만 두고 연락 한 번 하지 못했는데, 마침 그를 떠올리고 있던 차에 그가 먼저 안부를 전해왔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컸다.


그와의 인연은 20년 전, 6개월 과정의 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 시작되었다. 교육기관에서 처음 만났고, 나는 42번, 그는 44번이었다. 우리 사이에 한 명을 두고 같은 조로 편성되면서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동년배였던 우리는 금세 호감을 느꼈고, 6개월의 시간을 거의 함께 보냈다. 서로의 이름 가운데에 ‘망’ 자를 넣어 호칭하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함께하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그에게 더 많은 신세를 졌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늘 참 고마운 사람이다.


교육받던 시절의 기억도 떠오른다. 한 과목의 과제물을 제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교관이 우리 둘을 불렀다. 영문도 모른 채 찾아갔다가 곤욕을 치렀다. 과제물 내용이 유사하다며 서로 베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적잖이 당황했다. 형식은 비슷할 수 있어도 내용은 다르다고 오랜 시간 항변했다. 그 자리에서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검토하겠다는 말만 듣고 나와야 했다. ‘괜찮겠지’ 하면서도 혹시 모를 결과가 걱정되어 며칠을 마음 졸이며 보냈다. 다행히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고, 우리는 그동안의 긴장을 한꺼번에 풀며 웃을 수 있었다.


6개월의 교육 기간 중 환절기를 맞아 나는 비염으로, 그는 알레르기성 피부질환으로 고생했다. 꽃가루 같은 환경 요인 탓에 나는 연신 콧물을 흘렸고, 그는 아토피 피부염으로 피부가 건조해져 얼굴이 벗겨졌다. 피부가 껍질처럼 일어나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였다. 야외 수업 중 풀밭에 앉아 식기를 다리에 받친 채 마주 보고 식사하며 웃던 장면은 지금도 짠하게 남아 있다. 환절기 질환과 제법 긴 싸움을 치른 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함께 어려움을 견뎌냈다는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나는 중·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연락이 끊겨 그 시절의 인연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를 20대 중반에 만났는데, 학창 시절의 친구들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힘들었던 시절, 고민을 털어놓을 때면 그는 늘 귀 기울여 주며 혜안을 건넸다. 나의 비밀을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은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체득한 그의 내면의 깊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내 마음의 길을 열어주었고, 나는 세상과 막힘없이 소통하며 낙관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었다.


6개월의 교육이 끝난 뒤 우리는 헤어졌지만, 전화로 꾸준히 안부를 나누었다. 십여 년이 지나 같은 부대에서 다시 만났고, 또 십 년이 흐른 뒤, 1년 전에 다시 만났다. 그와 동행하며 안부를 주고받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행복과 든든함을 주는지 새삼 느낀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다는 것 또한 큰 감사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로 우리는 하나의 관계가 되고, 마음에만 머물던 정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함으로써 우리의 인연은 끊이지 않고 단단해진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안부를 나눈다.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함께하고 있음을 전하기 위해서이며,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축복일 것이다. 친구란 내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이자, 마음이 머무를 수 있는 쉼터 같은 존재다. 관계는 상호적인데, 그에게 있어 나는 어떤 사람일지, 우리라는 관계는 어떤 의미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관계의 영역에서, 친구로서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바쁘다는 이유로, 삶을 핑계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생겨난 친구와의 공백을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겠다. 세상에 둘도 없는, 참으로 고마운 친구에게 감사와 안부의 마음을 더는 담아 두지 않고, 생각날 때 바로 전해야겠다.


2024년 7월 대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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