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하며 배우는 삶의 철학

by 전우 호떡

나는 이발하는 시간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이발소에 가는 일 자체가 즐겁고, 이발사 아저씨에게도 자연스레 정이 간다. 대체로 이발사 아저씨들은 소탈하고 편안한 성향이라, 처음 찾은 이발소에서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된다. 서로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고향이 어디인지 묻고, 살아온 이야기나 가정사로 화제가 이어진다.


어느 날 이발소에 갔는데, 이발사 아저씨가 바뀌어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어쩐지 낯이 익었고, 아저씨 역시 나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며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전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몇 년 전 내가 근무하던 부대의 이발소에서 근무하셨던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직접 내 머리를 깎아준 적은 없지만, 오가며 얼굴을 트던 사이였다. 아저씨는 그때 한 달 남짓 내가 근무하던 곳으로 자리를 옮겼었다고 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거주지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이 근처에 산다고 하셔서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어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저씨는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어려움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사람 사는 일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나 역시 인간관계에서 겪었던 일화를 덧붙이며 사람의 성향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공감했다.


아저씨는 자신이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도 들려주었다. 실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일하다가, 언젠가 혼자 가게를 차릴 수 있는 기술을 고민하던 끝에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해 이발을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1년간 사회에서 일한 뒤 우연히 군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렇게 30년 동안 이발 일을 하게 되었다.


형이 먼저 결혼해 멀리 떨어져 살게 되면서 자연스레 장남 역할을 맡게 되었고, 부모님을 모시며 동생의 대학 진학까지 책임지다 보니 결혼이 늦어졌다. 그러다 마흔이 되어서야 마음을 다잡고 노력한 끝에 운 좋게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고 했다. 말 그대로 인생의 황금기라 할 청춘을 가족을 위해 모두 바친 셈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아저씨는 소탈하게, 웃음을 섞어 담담히 풀어냈다. 그 담담함 앞에서 나는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졌다. 잠시 뒤 아저씨는 가정 이야기도 이어갔다. 아내와는 같은 업종에서 일하며 가까워졌고, 결혼 전부터 시부모님을 공양하겠다고 말한 점이 특히 마음에 들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도 아내가 시부모님을 살뜰히 모시며 효심이 깊다며 조용히 자랑을 덧붙였다.


그러나 이야기는 반전을 품고 있었다. 딸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아내가 큰 병을 앓아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것이다. 완치 판정을 받긴 했지만, 음식을 잘 먹지 못해 몸이 많이 마르고 사람들과의 교류도 꺼리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예, 괜찮아요.”
아저씨의 낮고 수수한 목소리에는 모든 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관조와 수용의 태도가 배어 있었다. 차분하고 푸근한 그 음성에서는, 세상의 큰일을 한 번쯤 겪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도량이 느껴졌다.


우리는 때때로 드라마 같은 삶을 타인의 이야기에서 마주한다. 아저씨의 인생이 그러했다. 출퇴근 버스가 다니는 곳까지만 개인 차로 이동해 출퇴근을 한다는 말도,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오며 집 한 채와 오피스텔 하나를 마련했고, 지금도 부족하지 않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저씨는 담담히 내비쳤다.


이발을 마칠 무렵, 아저씨는 자신의 인생철학을 들려주었다.
“건강이 제일이에요. 건강하기만 하면 아무 문제 없어요. 돈은 욕심이에요. 없어도 되고, 있으면 있는 대로 살면 돼요.”


나는 그 말 속에서 삶을 꿰뚫고 나온 여유를 보았다.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사물을 바르게 보고 판단하는 경지에 이른 사람의 태도였다. 감히 바라보건대, 아저씨의 가정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이어져 있을 것이다. 그 관계 안에서 감사의 마음으로 삶의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며, 주어진 인생의 모험을 성실히 건너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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