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행사에 참석했다. 다음 날 동료가 다가와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예전에 소대장 시절, 이 소대원 기억나십니까?”
사연은 이랬다. 행사장에서 한 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따라오다, 내가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인사를 하지 못했고, 대신 동료에게 나에 대해 물었다는 것이다. 이름은 어렴풋이 기억났지만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다.
벌써 26년이 흘렀다. 그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사진을 보는 순간 기억이 또렷이 되살아났다. 그가 누구였는지, 어떤 성향이었는지, 어떤 직책을 맡았는지까지 한꺼번에 떠올랐다. 소대원을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잠시 기억 속에 묻혀 있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연락이 닿은 소대원이 한 명도 없었기에 더욱 반가웠다. 번호를 알아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는 내 말투 하나를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순간 긴장했다. 당시의 나는 성숙하지 못했고, 소대원에게 따뜻한 말보다는 거친 표현을 더 자주 썼다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해요’ 같은 말은 아닐 거라 짐작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랬다.
“가혹하리만치 혹독한 얼차려를 주겠다.”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있지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다행히 그는 “개그처럼 말로만 하셨다”고 답했다. 그제야 철커덩 내려앉았던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내가 그런 말을 절대 하지 않았다고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나는 소대원을 대함에 있어 일관된 기준을 갖지 못했다. 나만의 철학이나 줏대보다는, 조직의 분위기와 주변의 언어, 행동에 쉽게 영향을 받았다.
조직에 속한 사람은 보고 듣는 것을 따라 하기 마련이다. 분명한 자기 기준이 없으면, 타인의 방식에 끌려가게 된다. 나 역시 그러했다. 나만의 관이 없었기에, 과거의 나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그랬는지, 아니었는지”조차 흔들리게 되었다.
소대장으로서 일관된 리더십을 논할 자격이 있었는지 돌아보면 부끄러움이 앞선다. 소대원에게 미안한 마음도 크다.
“남에게는 관대하고, 나에게는 엄격하라”는 좌우명은 그저 구호에 머물렀던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도 든다.
그럼에도 감사하다. 26년이 지난 지금, 한 소대원이 나를 기억하고, 찾아왔다는 사실이.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내 삶에 내가 직접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임을 다시 깨닫는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의 태도에 대해 묻는 날이 온다면, 그때만큼은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 있기를 조용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