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대대장을 마치기 한 해 전 동생은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라는 책을 내게 선물했다. 내가 알고 있던 이순신 장군은 무과 시험에서 낙마한 뒤 버드나무 껍질로 다리를 동여매고 끝까지 시험을 치렀다는 교과서 속 일화, 그리고 역사 시간에 배운 한산도대첩과 명량·노량해전이 전부였다.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이순신은 시대를 막론하고 존경받는 인물 1위로 꼽히지만, 나는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나라를 구한 성웅이 되었는지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이순신의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이 책은 이순신의 성장 과정부터 일대기를 따라가며, 그가 어떻게 인격과 무인으로서의 철학, 그리고 사생관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나는 전쟁에서 기적과도 같은 전승불패를 이룰 수 있었던 근원이 헌신적인 임무 완수의 자세와 부하들과의 신뢰, 소통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 책을 대대장 재임 기간 내내 숙독하며 뜻을 음미했고, 지휘관으로서의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로 삼았다.
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다시 조선을 침략하려 하자 왜는 사전에 이순신을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왜의 간첩 요시라를 내세워 이순신을 음해하려는 계책을 꾸민다. 요시라는 경상우병사 김응서를 통해 “가토 기요마사가 곧 바다를 건너올 것이니, 이순신으로 하여금 공격하게 하면 일본을 물리칠 수 있다”는 거짓 정보를 흘렸다. 김응서는 이를 조정에 보고했고, 임금은 이 말을 믿고 이순신에게 출전을 명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정보의 출처가 적에게 있음을 근거로 왜의 유인책이라 판단했다. 출전할 경우 조선 수군이 적의 진영 깊숙이 유인되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것이라 보았기에, 그는 두 가지 이유에서 출전을 거부했다.
결국 이순신은 왕명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한산도 통제영에서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고, 옥에 갇혔다. 임금은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고까지 했으며, 이순신은 투옥 중 두 차례에 걸쳐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당시의 고문은 생명을 위협하는 극형이었기에, 그가 목숨을 부지한 것 자체가 기적이라 할 만했다. “장수는 국가의 안위와 직결되니 함부로 큰 벌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우의정 정탁을 비롯한 충신들의 간절한 상소가 이어졌고, 결국 임금은 이를 받아들여 사형을 면하게 했다. 이순신은 백의종군 명을 받고 도원수 권율을 따라 종군하게 된다.
이순신이 한산도에 억류되어 있는 동안, 순천에 거주하던 어머니는 아들의 석방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올라오다 배 위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순신은 어머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다. 뒤늦게 부음을 전해 들은 그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 통곡했고, 몸과 마음은 극도로 피폐해졌다.
같은 해 8월,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왜의 기습을 받아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다. 조정은 사태 수습을 위해 병조판서 이항복의 건의로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 그러나 그가 다시 모은 조선 수군의 전력은 고작 열두 척의 배뿐이었다. 조정에서는 수군 폐지론까지 거론되었으나, 이순신은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고, 신이 있는 한 적이 감히 우리 수군을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결연히 말하며 전열을 재정비했다. 그리고 명량해전에서 기적과도 같은 대승을 거두었다.
이순신은 화를 피하기 위해 진실을 주장하지 않았다.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억울함을 해명하려 들지 않았다. 오해조차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묵묵히 감내했다. 다만 일기를 쓰며 어지러워진 마음을 정리했을 뿐이다. 그의 일기는 놀라울 만큼 간명하다. 어머니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라며, 돌이킬 수 없는 생의 비정함을 조용히 토해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결코 견뎌내기 어려운 극한의 고통과 시련을 이겨낸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 “사람은 성품과 기질은 타고나지만, 인품은 만들어진다.” 이순신은 끊임없는 수양과 수련을 통해 나라를 구하는 장수가 되었다. 자신에게 닥쳐올 화를 짐작하고도, 자신을 처벌하려는 임금의 명을, 나라와 백성을 위한 충성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임금은 왜의 간계와 조정의 모함에 휘말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장수를 옥에 가두고 고문하는 우를 범했다. 이순신은 풀려난 뒤에도 죄인의 몸으로 종의 집에 기거하며 끝까지 충을 다했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전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도 그는 원망과 분노를 내려놓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전선을 살피고 방비할 계획을 세우겠다고 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조정을 향한 감정을 넘어,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전장에 섰다. 그는 자신을 하나의 개인이 아니라 조국에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할 나라의 소유물로 여겼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장수의 운명이라 여겼기에 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억울한 옥살이와 고문, 충을 의심받고 버림받는 처지 속에서도, 어머니와 자식을 잃고 수년간 일궈 온 군사력이 한순간에 사라졌음에도, 이순신은 단 한순간도 나라와 민족에 대한 충의 가치를 저버리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이럴 수 있을까.” 성웅이라는 이름이 헌사된 이순신을 통해, 우리 모두가 그의 정신을 되새기고 각자의 자리에서 이 시대의 이순신이 되려는 풍토가 자리 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