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소대장으로 야전부대에 배치되었다. 소대원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언행을 접했을 때 적잖이 놀랐다. 경례 구호는 “단결! 하면 된다”였지만, 빠르게 발음되며 “단결합니다”처럼 들렸다. “잘 못 들었습니다”는 “잘못 씁니다”, “잘못 씀다”로 변형되곤 했다. 군 복무에 대한 숙련도를 압축어로 과시하듯, 선임병이 될수록 말의 축약은 더 심해졌다. 일부는 의도적으로 더 빠르게 발음했다. 인접 중대 병사를 ‘아저씨’라 부르거나, 그들만의 은어를 사용하는 모습 또한 낯설고 불편했다.
불분명한 언어는 불분명한 사고에서 비롯되지만, 역설적으로 불분명한 언어는 다시 불분명한 사고와 행동을 낳는다. 나는 이러한 습벽이 태도의 흐릿함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언어가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고 강조하며 지속적으로 계도했지만, 몸에 밴 언어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소대장 재임 기간 내내 설득했으나,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결국 그들의 언어는 바뀌지 않았고, 다만 내 앞에서만 조심하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병사들은 입대와 동시에 선임병이 해 오던 관습에 자연스레 젖어든다. 조직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불문율처럼,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분위기를 읽고 어깨너머로 체득한다. 이러한 문제를 진단해 군은 2012년부터 병영에서 잘못 사용되는 비속어, 일본어, 외래어, 은어 사용을 제한하고, 이에 대응하는 올바른 표현을 제시하는 교육을 시작했다. 또 다른 부대의 병사나 선임을 ‘아저씨’라 부르던 관행도, 이름과 계급을 함께 부르는 방식으로 바로잡았다.
잘못된 언어는 군의 문화를 흐린다. 올바른 언어 사용이 곧 문화 개선의 출발점이라는 인식에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후 군은 ‘병영 언어순화 지침서’를 발간하는 등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은어와 비속어 사용은 크게 줄었으며, 과도한 발음 축약도 보기 어려워졌다. 이는 문제를 함께 인식하고 공감한 힘의 결과라고 본다.
어렸을 적 버스를 타면 담배 냄새 때문에 멀미를 하곤 했다. 지금은 법과 제도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금기시되어 그런 풍경을 거의 볼 수 없다. 우리가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공감할 때, 해결을 향한 노력이 싹튼다. 그 노력이 오랜 시간 지속되어 문화 속에 스며들 때 비로소 문제는 해결된다. 소대장 시절, 나에게 힘에 부쳤던 그 문제 역시 공감을 얻지 못했기에 소대원들이 해결의 동기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어떤 일이든 스스로 필요성을 느낄 때 가장 빠르게 해결된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조직 구성원의 공감이며, 그 위에서야 비로소 문제의 본질에 실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