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처럼 물드는 시간

by 류하 스텔라

오늘 화담숲에 다녀왔다.

봄에는 화사하게 피어난 꽃과 새순을 보았고,

여름에는 뜨거운 햇살 아래 수국이 피어나고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푸르게 자라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리고 오늘, 가을의 숲은 노랗고 붉게 물들어 있었다.

꽃을 피우고, 잎을 키우고, 열매를 맺던 나무들이

이제는 자신이 가진 색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색은 화려하지만 조용했고,

마지막까지 아름다우려는 생의 의지처럼 느껴졌다.


숲을 걸으며 문득 생각했다.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피어나는 시절이 있었고,

싱그럽게 뻗어 나가던 여름이 있었고,

열매를 맺던 시간이 있었다.

이제 나는 단풍이 든 나무처럼

내가 가진 모든 빛을 다해 물들고 있는 시간 속에 서 있다.


봄의 꽃은 꽃대로,

여름의 나무는 나무대로,

가을의 단풍은 단풍대로,

겨울의 가지는 가지대로 아름답다.

모든 계절엔 그 나름의 이유와 모습이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 인생의 가을을 살고 있다.


잎이 떨어진 나무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겨울을 맞이한다.

하지만 나는 그 나무를 볼 때마다

‘비어 있음’이 아니라 ‘다 이룬 모습’을 본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단풍으로 물든 뒤

모든 걸 내려놓은 나무는

그 자체로 완성이다.


내 인생의 정리도 그와 같다.

무언가를 더 얻기보다,

이제는 내려놓으며 감사할 시간.

채워졌던 마음을 비워내는 일,

그 안에 여백을 남겨 두는 일.

그게 나의 인생 정리다.


오늘의 숲에서 나는 배웠다.

모든 나이듦에는 빛이 있고,

모든 끝맺음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내가 그 끝을 맞이할 때,

이 단풍처럼 온 힘을 다해 물들 수 있다면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무처럼,

모든 것을 다 이뤄낸 그 자리에서

부끄럽지 않고, 슬프지 않은

당당한 모습으로 남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그렇게 남아 있기를 바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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