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서머

by 류하 스텔라

살다 보면 지금 이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이 나에게는 가장 따뜻하고 소중하다.


언제부턴가 ‘인디언 서머’라는 단어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계절로 치면 가을 속에 잠시 찾아오는 여름 같은 포근한 시기.

인생으로 치면 노년기에도 잠깐 찾아오는 작은 황금기 같은 시간 아닐까 생각했다.


젊을 땐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고, 해야 할 일에 쫓기느라 내 마음을 돌아볼 겨를조차 없었다.

그저 바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믿으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다 어느 날,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를 열심히 채우는 것만으로는 마음까지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더디게 흘러가는 듯하면서도 훨씬 소중하게 느껴졌다.

매일이 다시 오지 않을 단 하루라는 사실이 마음 깊숙이 와닿기 시작했다.

이제는 바쁘게 살기보다는, 느리고 깊게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얼마 전 친구들과 여행을 갔던 날, 새벽에 휴대폰으로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예전에 같은 동네에서 캘리그래피를 함께 배우던 사람의 부고였다.

1년 정도 연락이 뜸했던 사이였는데, 전자 부고장이 도착했을 때 한동안 멍하니 휴대폰 화면만 바라봤다.

연말이었던 그때, 너무 당황스러웠고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것은 처음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 이 시간이 결코 무한하지 않고, 분명히 유한하다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영원할 것 같지만, 사실은 한순간에 달라질 수 있는 게 우리의 삶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가 가을 속에 잠시 찾아오는 따뜻한 햇살 같다고 느껴졌다.


지금의 나에게는 느리지만 깊이 있게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 안에 스며드는 잔잔한 기쁨과 여유로움 속에 스치는 쓸쓸함,

어느 정도 책임을 다하며 느끼는 안도감과 가끔 찾아오는 아쉬움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싶다.


그 마음들을 기록하며, 이 시간이 나의 인디언 서머처럼 짧지만 따뜻하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