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조용한 집 안에서 나 스스로의 숨소리가 크게 느껴진다.
북적거림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은 사라지고, 이제는 고요함 속에서 나와 마주하고 있다.
지난 금요일 드로잉 수업 시간에 ‘북정마을’을 스케치했다.
예전에는 이 마을에서 매주 콩을 삶아 궁에 납품했다고 한다.
그래서 ‘북적북적하다’는 말에서 유래해 북정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북적거리는 소리. 사람 사는 냄새, 오래된 골목의 웃음. 그리고 나의 옛집이 떠올랐다.
코로나 시절, 우리 가족은 온전히 집 안에 있었다. 남편, 딸, 아들, 그리고 나. 외출도 외식도 자제하며 매 끼니를 함께했고,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며 웃었다. 나는 식탁을 풍성하게 차리기 위해 매일 새로운 요리를 고민했고, 그렇게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우리 넷이 함께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아들이 취업하며 집을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도 독립했다.
집은 남편과 나, 둘만의 공간이 되었고, 어느새 그마저도 익숙해졌다.
가족이 함께 살기 위해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공간을 고쳐 꾸몄지만, 진짜 함께했던 시간은 겨우 3년 남짓이었다. 지금은 그 넓은 집에 나 혼자 남아 있다.
요리를 위해 넓힌 주방은 거의 쓰이지 않고, 각 방의 수납장은 텅 비었으며, 주인 없는 침대들은 각자의 방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다. 남편의 서재는 잡동사니로 하나둘 채워지고, 나는 문득 북정마을을 그리며 어릴 적 살던 동네와 가족,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 시절이 그립다. 하지만 누군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히 “아니요”라고 말할 것이다. 지금의 고요함이 좋다.
물론 그 여유 속에는 고독과 외로움이 함께 섞여 있지만, 그것 또한 여유가 주는 대가라고 생각한다.
삶을 북적북적 채워갔던 시절은 이제 그리움으로 남았다. 그 시절의 분주함 속에도 기쁨이 있었지만, 지금의 고요 속에서도 나는 내 마음을 더 또렷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그 추억들을 내 스케치북 속 그림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지금의 고요함을, 그리고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나의 감정을 온전하게 느끼는 지금이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