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우리가 다시 모인 날

by 유혜빈


이별은 끝이 아니라,
다시 서로를 바라보게 해주는 시작이었다.


할머니는

가족들이 모두 모인 어느 날,

가족의 품 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그 순간이 믿기지 않아

나는 할머니 손을 오래도록 붙잡고 있었다.

주름진 손끝의 온기는

조금씩, 아주 천천히 사라져 갔지만

차마 놓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빈소는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주, 손주사위, 증손주들까지—

할머니가 평생 지켜온 가족들만으로도

장례식장은 북적였다.


그리고 소식을 들은 친척들이

하루도 미루지 않고 달려왔다.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 함께 울고 웃던 얼굴들이

낯익은 모습 그대로

“잘 지냈어?” 하며 손을 맞잡았다.


“너 그때 초등학생이었잖아.

내가 본 게 언제인데 벌써 이렇게 컸어?.”

“아이고야, 얼굴 보니까 옛날 생각 다 나네.”

“오느라 고생했지. 그래도 와줘서 고맙다.”


누군가는 조용히 할머니께 절을 올렸고,

누군가는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이내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래전 이야기가 하나둘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옛날엔 잡채를 잔치하듯이 했잖아.

오다가다 서로 집어먹으면 금세 없어졌지.”

“말도마~ 집에 사람이 많아서 밥 두 번 차리고도 모자랐어.”

“그래도 그때가 참 좋았어.”


“우리 간식으로 국수도 엄청 삶아 먹었잖아.”

“멸치국수에 김치 얹으면, 몇 그릇은 기본이었지…”


빈소 한쪽에서 나눈 이야기들에 잔잔한 웃음이 퍼졌고,

사람들 얼굴에도 오랜만의 따뜻한 기색이 번졌다.


장례식장이었지만

그곳은 마치 오래된 외갓집 마당 같았다.

따뜻한 정이 흐르고, 진심이 오가고,

시간이 잠시 거꾸로 흐르는 듯한 곳,


누구도 먼저 떠나려 하지 않았다.

이곳은 그저

조용히 인사만 하고 돌아가는 자리가 아니었다.


삼일장을 치르는 내내

사람들은 함께 머물렀고,

함께 울고,

함께 웃었다.


밤늦게까지 술 한 잔을 기울이면

그 시절의 추억이 조용히 되살아났다.

담요를 나눠 덮고,

어릴 적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우린 정말… 어머니 덕분에 다시 모였네.”

“그러게. 마지막까지 우리 다 불러 모으셨다니까.”


누군가 그렇게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의 장례식은

눈물만으로 채워진 자리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날이면서,

서로를 다시 만나는 날이었다.


잊고 지냈던 얼굴들이,

바빠서 멀어졌던 마음들이

할머니를 중심으로 다시 하나로 모였다.


어린 시절,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만둣국 한 그릇 나누던 명절날처럼…

장례식장은

그리움 속에서 되살아난 온기로 가득했다.


마지막까지도

그런 할머니답게,

모두를 한자리에 모아놓으셨다.


어떤 말보다 따뜻했던 눈빛,

말없이 건네는 손길 하나하나가

그날의 기억을 천천히 채우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서로를 다정하게 불러주었고,

그 모든 감정들 위로

할머니의 마음이 오래도록 남았다.


이별의 자리는

다시 만남의 자리가 되었고,

할머니는 그 마지막 순간마저

우리에게 선물처럼 남겨주고 가셨다.


가장 따뜻한 작별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또다시 이 마음으로

다시 모일 것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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