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위, 가장 따뜻한 배달

매일 아침, 한 잔의 온도를 들고 걷는 사람

by 유혜빈



흰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어느 아침이었다.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골목 위를

한 할아버지가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눈 위에 또렷한 자국이 하나씩 남았다.

뽀드득,

잠시 멈춤,

그리고 다시 한 걸음.


할아버지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더니

어깨 위 눈을 털며 중얼거렸다.


“길이 얼지 않아 다행이네.”


눈발은 어느새 멎어 있었고

골목은 유난히 조용했다.

발자국만이

카페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딸랑,

문 위 종이 가볍게 울리자

할아버지가 카페 문을 밀고 들어왔다.


“아이고 어르신, 눈이 이렇게 왔는데도 나오셨어요?

많이 추우시죠. 얼른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할아버지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웃었다.


“아침에 할 일을 해야 또 하루를 시작하죠.”


잠바 안쪽에서 조심스럽게 텀블러를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라떼 한 잔, 맛있게 해 줘요.

집에서 이거 한 잔 기다리고 있다고.”


사장님은 익숙한 손길로

우유를 데우고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김이 천천히 올라왔다.


“어르신 정말 멋쟁이세요.

할머니께서 너무 좋아하시겠어요.”


할아버지의 얼굴에

천천히 웃음이 번졌다.


텀블러를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짧게 인사를 남겼다.


“내일 또 올게요.”



문이 닫히고

종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다.


할아버지는 텀블러를 품에 안았다.

새어 나오는 온기를 느끼며

골목으로 발을 내디뎠다.


카페 사장님의 말 한마디가

괜히 기분이 좋아서

추운 줄도 모르고 걸음을 옮겼다.


라떼는 흔들리지 않게 들어야 했다.

조금만 기울어도 맛이 달라진다.


경비 아저씨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눈길인데 조심히 다녀오셨어요?”


“네, 오늘은 길이 안 얼어서 괜찮네요.”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웃과도 짧게 인사를 나눴다.


“아침부터 어디 다녀오시나봐요?”


“커피 한 잔 사 왔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신발도 채 벗기 전에

아내의 이름을 먼저 불렀다.


“여보, 커피 식기 전에 마셔요.”


조금이라도 더 따뜻할 때

마시게 해주고 싶었다.


할머니는 천천히 다가와

텀블러를 받아 들었다.


한 모금 마시더니

슬쩍 웃으며 말했다.


“커피가 흔들렸나 보네.

라떼 하트가 망가졌잖아.”


투정처럼 들렸지만

그 말속에 고맙다는 뜻이

늘 함께 있다는 걸

할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커피를 내려놓더니

찬장에서 작은 잔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는 천천히 커피를 따르고 내밀었다.


“같이 마셔요.”


할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왜 한 잔인데 혼자 맛있게 마시지.

그럼 조금만 줘요. 맛만 보게.”


잔을 받아 들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와

고소한 커피 향이

두 사람 사이에 오래 머물렀다.


내일은

조금 더 천천히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쁜 라떼 하트를 그대로 전해주고 싶었다.


눈이 오나,

날이 맑으나,

아침마다 이 길을 걷는 이유는

늘 같다.


따뜻한 걸

먼저 건네고 싶은 사람이

집에 있기 때문이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