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 지자.
나는 결혼을 하고싶었다.
결혼에 대한 달콤한 환상은 없었다. 그와 하루를 함께 하고싶었다. 하루의 끝인 저녁을 그와 함께하는 시간의 시작으로, 하루의 시작은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의 쉼표로 만들고 싶었다. 그 욕망은 우리를 함께 살게 만들었다. 물론 나의 핏줄을 가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아서는 안됐다. 내가 속했던 사회의 사람들도 알아서는 안됐다. 나의 가치관과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이야기 할 기회더 없이 내 도덕적 사고관이 얼마나 허술한지, 얼마나 근본없는 애인지 사람들에 의해 난도질 당할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도 몰래 ‘동거’라는 새로운 일상을 시작했다. 힘들었다. 그와의 완벽한 삶을 나는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다. 그와 내가 함께 하기 때문에 얻었던 행복함, 그와의 일상속에서 내가 성장하는 모습, 그 어느것도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내 삶의 가장 찬란하고 행복한 순간은 내 안에 꼭꼭 동여매여 숨겨져 있었다. 길고 긴 통화가 끝날 때 쯤이면, 언제나 “몸 조심 하렴.. 무슨말인지 알지?”라던 어머니의 이중적인 인사말이 나를 불쾌하게 했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난 도대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끝없는 질문에는 끝없는 침묵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잘못한게 없어서인지, 내 “도덕적 사고관”이 망가져서인지 알수 없을때 쯤, 난 죄책감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뿐이였다. 그렇다고 내 핏줄과 내가 나고자란 문화에 정면으로 부딪혀 싸울 용기는 없었다. 나는 그만한 배짱은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나는 결혼을 생각하게 됐다.
결국 결혼은 나에게 있어 사회적 동거 허가의식밖에 되지 않았다.
결혼준비를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언제 결혼을 결심했느냐고. 참으로 대답하기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럴때면 그저 웃으며, 아버지가 곧 퇴직하셔서요… 그전에 두 딸 중 하나는 가야할 것 같아서… 라고 말한다. 정말 무서운건, 모든 한국인이 나의 대답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 조차도 이해하지 못한채 기계적으로 답하는 변명을, 모든 한국 사람은 이해하고 있었다. 어째서 한 인간의 삶의 계획과 방식이 부모의 삶의 단계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인가. 이와 같은 논리라면 나의 번식여부 결정에 부모님이 개입하는 것 역시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소름끼친다. 도대체 내 자유 의지는 언제 온전해 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독립하여 내 삶을 살아낼 수 있는 한 성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나를 지켜줄 ‘남편’이 있어야지 ‘아버지’가 안심할 수 있다. 오빠가 없는게 다행인걸까. ‘자상한 오빠’가 있었다면, 아마 내 남자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의 허락이 필요 했겠지. 왜 가치관이 확립된 성인의 결정에 허락이 필요한가. 내가 가치관을 형성하기 까지, 가족이 옆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과 긍정적인 유대관계가 필요한 것이고, 긍정적 유대관계속에서 가족들의 가치관을 보고 배우게 될 것이다. 가족이, 그리고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딱 거기까지다. 아니 거기까지여야만 한다. 형성된 가치관을 토대로 한 개인이 내리는 결정은 오롯이 당사자의 몫이어야 한다. 책임도 당사자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결정에 자신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정말 그 사람을 걱정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고 내가 해야할 일은 타인이 삶에서 내리는 선택에 대한 허락 대신 모든게 지나가고 기쁨이 왔을때 그 행복을 축하해주고, 아픔이 왔을때 찾아온 고통의 시간을 함께 견뎌나가 주는 것이다. 권유도 조언도 과하면 폭력이다. 남들 다하는 평범한 결혼을 평범하게 진행하는 평범한 20대 여자의 머릿속은 사실 이렇게나 의문 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