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시큰거리는 계절이 돌아오면 언제나 2003년 중학교 3학년 교실로 돌아간다. 언제나 멋진 음악을 듣던 짝꿍의 mp3 음악 목록을 훔쳐보았다. 집에 돌아와 기억을 되짚어 어렵사리 찾은 음악을 내 mp3에 담았던 은밀한 기억에는, 동경도 질투도 사라지고 시큰거리는 마음만 아로새겨졌다.
원체 인간관계에는 잼병이었다. 특히 구어적 언어가 동반된 소통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부모님은 내가 또래보다 1년 먼저 학교를 들어간 탓이라고 했고, 선생님은 내가 또래보다 조숙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그냥 인간관계 능력이 다소 덜 발달된 거다. 내가 어려서도, 더 성숙해서도 아니고, 그냥 나라는 인간은 그런 사람인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주변에 있어야 했고, 유난히 외로워했고, 쓸쓸해했다. 유년시절도, 사춘기도,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도.
하루 일과가 끝나고 고단함과 지침이 찰랑찰랑 넘칠 때쯤이면,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뒤져 연락한 지 가장 오래된 지인을 고른다. 연락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은 내 삶의 이야기에 질렸을 테니까. 가장 덜 질렸을 것 같은, 다소 식상하더라도 오랜만이니 이 정도는 너그러이 이해해 줄 수 있는 이를 고른다. 이때, 마지막 3회 연락 중 단 한 번도 상대가 먼저 연락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젠 내 전화번호부에서 사라질 때가 된 거다.
이렇게 어렵사리 고른 상대에게 전화를 혹은 메시지를 보낸다. "뭐하고 지내니"라고 쓰고, 나 좀 살려줘, 내 삶이 나를 갉아먹고 있어.라고 읽는다.
막상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이러한 삶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 네가 생각난다. 이런 찌질함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누구보다 가까웠던 너도 생각난다. 아 정말 안찌질하고싶다 라는 말에 인간은 원래 찌질한거야, 그걸 받아들이는 게 진정한 승자지- 그런 말을 했던 너도 생각난다.
생각 나는 사람은 너무 많은데 모두 스쳐만 갈 뿐, 도무지 형상화되지 않는다. 마치 내 삶에 그런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무얼 해도 내 마음의 번민함은 도무지 가실 길이 없구나.
아마 그런 계절이 된 탓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