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슬픔

by Hong Ryu Jaehee


산수유 꽃이 노랗게 띠띠미 마을을 수놓기 시작할 무렵 쓰러지신 할아버지는 울긋불긋한 가을 단풍이 찾아오기 전 이 세상을 떠나셨다. 평생 화초를 좋아하시던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엔 70개도 넘는 화환들이 할아버지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고한다. 장례식장에 없었던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슬픔의 순간은 진부하게도 예고 없이 찾아온다. 연구실에서 실험으로 바빴던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트램이 중앙광장의 코너를 돌 때 라던가, 트램에서 내려 Y가 기다리는 Clara-platz 분수 앞으로 뛰어갈 때 라던가, 혹은 식사를 마치고 Y와 함께 침대에 누워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릴 때 와 같은 순간들 말이다. 살아 숨 쉬는 사람들 사이에 이제 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나에겐 이렇게나 쉬운 뜀박질이 할아버지에겐 수년간이나 어려웠으며 이제는 그 어떠한 행동들도 할아버지가 주어인 문장으로는 현재시제로의 서술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내가 이렇게 스스로의 배를 불릴 동안, 할아버지는 몇 주간이나 음식을 넘기지 못해 배고픔 속에 고통받으셨다는 사실, 모든 것들이 나에겐 죄책감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이 보다도 더 큰 후회는, 편지 한 통 부쳐드린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정말, 이곳에 온 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할아버지에게 편지 한 통 부쳐드린 적 이 없었다. 변명을 하자면, 할아버지께서 언젠가는 돌아가시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한 채 미루고 미룬 나의 게으름과 우둔함을 탓할 것이다. 그러나, 그 변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아버지가 나의 편지를 받아보셨으면 얼마나 행복해하셨을지는 생각했으면서, 정작 편지 한 통도 부치지 못했다는 사실로 아직까지도 괴롭다.


조그만 약국을 하시던 할아버지의 사랑방엔, 언제나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들었고. 의사 면허는 없으셨지만, 전쟁통에 의사 선생님 옆에서 조수일을 하실 수 있을 만큼 박식하셨고, 영민하셨다. 대나무에 실과 플라스틱 약통을 달아 퍼즐을 직접 만드셨고, 손녀가 낑낑대는 모습을 개구지게 쳐다보셨다. 말씀보다 가벼운 마른 세수가 더 많으신 분이셨다. 당신의 나이를 잊으신듯 새로운 지식에 대한 갈망이 있으셨다. 70이 넘은 나이에 운전면허를 취득하셨고,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기 직전까지 손수 운전하여 컴퓨터를 배우러 다녀오셨다. 나의 할아버지는 올해로 92이셨다.


혼자 할아버지의 죽음을 감당하는 것은 버겁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죽음을 온 몸으로 오롯이 혼자서 받아냈겠지. 지구 반대편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슬픔으로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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