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베스트"라는 기준에서 선정한 리스트가 아님을 밝힌다. 여러 매체와 평론가들의 연말 결산 리스트에서 의외로 주목을 받지 못한 개인적인 관점에서 과소평가되었다고 생각하는 곡들을 선정했다.
10. B1A4 – Rollin', 브레이브걸스 – Rollin'
공교롭게도 같은 제목의 노래들을 공동 10위로 선정했다. 솔직히 BTS의 (해외 트렌드에 맞춰진) 음악에 큰 감흥을 받지 못한 나에게는 B1A4의 'Rollin''이 올해 최고의 보이그룹 싱글이다. 평소 음원차트 같은 건 크게 신경쓰지 않아서 브레이브걸스의 'Rollin''이 어느 정도 인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마침내 포텐이 터진 곡이라고 생각한다.
9. CLC – 어디야?
이런 노래가 큰 인기를 얻지 못하는 걸 보면 확실히 대중들이 걸그룹에게 기대하는 건 이런 다소곳하고 예쁘장한 발라드가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예컨대 키스의 '여자이니까'와 베리굿의 '내 첫사랑'과 같은 비운의 걸그룹 발라드 계보를 이어가는 곡이 되지 않을까 싶다.
8. 아이디 – Best Mistake (K)
인디 씬의 아이유로 불리는 아이디는 아직은 음악보다는 외모로만 주목을 끄는 것 같아 아쉽다. 인디 록 스타일의 전개와 알앤비의 감성이 만난 독특한 느낌이 인상적이다. 이곡이 수록된 앨범 [Mix B]도 전반적으로 제법 완성도가 높은 수작이다.
7. 이나래 – 그곳은 어때
이진아의 [Random]도 훌륭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나래의 [Overwater]를 더 인상깊게 들었다.
6. 케이시 – Dream
아이돌도 아니고 인디도 아닌 이런 애매한 포지션에 있는, 좋은 음악성에도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뮤지션들이 올해도 많았다. 3년 전 수란에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때 "I Feel"을 벅스 결산 올해의 싱글로 꼽은 적이 있는데, 그래서 최근 가요계의 대세로 부상한 수란의 활약에 누구보다도 뿌듯한 감흥을 받았다. 요컨대 케이시는 개인적으로 "제2의 수란"이 될 가능성이 높은 뮤지션이라고 생각한다.
5. 수빈 – Strawberry
달샤벳이라는 간판을 내려놓은 수빈의 음악은 사뭇 진지하다. 매번 새롭고 자극적이어야만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걸그룹의 부담감을 떨쳐내고 자신만의 분위기와 색깔을 추구하는데 주력한다. 아이돌/걸그룹 멤버의 솔로 활동이 필연적으로 그룹의 공백기를 메우는 인기 유지의 목적에 충실했던 사례들을 돌이켜보면, 싱어송라이터로서 확고한 주관과 선명한 정체성을 표출하고 있는 수빈의 행보는 단연 돋보이는 인상을 남긴다.
4. 아이엠낫 – Fly (feat.이승열)
단언컨대 2017년 최고의 모던 록 발라드.
3. 이달의 소녀 오드아이써클 – Sweet Crazy Love
이달의 소녀 프로젝트는 기존 걸그룹의 음악에서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한 장르적 시도와 차별화된 콘셉트로 매번 새로운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사뭇 흥미롭다. 진지한 음악성과 완성도 높은 퀄리티에 심혈을 기울인 탁월한 프로덕션은 이달의 소녀 완전체가 f(x)의 계보를 잇는 컬트적인 걸그룹으로 성장하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2. 악동뮤지션 – Dinosaur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 인트로에서 서서히 분위기를 고조하는 신스 사운드, 중독성 있는 후렴구를 지나 비장한 피날레로 치닫는 곡의 전개와 구성도 훌륭하지만, 또한 이 노래가 흥미로운 것은 재치있고 함축적인 가사를 통해 청자들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저마다 품었던 아련한 동심의 판타지를 떠올리게 하는 한 편의 아름다운 음악동화.
1. 박지윤 – 그러지마요
요즘 이런 음악에 시큰둥한 대중들의 반응이야 그러려니 했지만 박지윤의 9집이 평론가들에게조차 푸대접을 받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보편적인 기준에서 잘 만들어진 훌륭한 스탠다드 팝 음악이 인정받지 못한다면 이 땅의 대중음악에서 “컨템포러리 팝”이라는 장르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