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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호우 May 17. 2016

옥상에서 쓰는 짧은 글.

시원할 줄 알았는데 꽤 쌀쌀해서 놀랐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옥상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면 기분이 꽤 상쾌해질 것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맥주와 함께 옥상에 올랐습니다. 저는 오피스텔에 살고 있습니다. 작은 방들이 밀집되어 마치 벌집을 연상시키는 소규모 오피스텔인데, 명칭은 오피스텔이지만 대여섯평의 협소한 원룸이지요. 그래도 옥상은 꽤 넓다랗고 벤치도 있기 때문에 이따금씩 옥상에서 바람을 맞곤 합니다. 옥상에 올랐더니 조금 춥습니다. 마치 아라비아 상인의 터번같이 생긴 둥그런 환풍기 팬이 빠르게 돌고 있네요. 춥지만 그래도 벤치에 앉습니다. 날씨보다 더 차가운 맥주를 마실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벤치의 등받이 각도가 심하네요. 시원한

옥상 벤치에 아무렇게 널브러지듯 앉아서 맥주를 홀짝거리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허리교정을 받는 학생처럼 척추를 곧추세워 바른 자세를 유지한 저는 추운데 맥주를 마실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딱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짧지만, 짧다고만 할 수는 없는)시간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번에도 역시 현실은 제 마음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올라올 옥상이 있고, 다행히도 옥상에는 아무도 없다는 점 - 혼자 있고 싶었던 기분도 중요하지만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게다가 생각도 못했던 눈부시게 밝은 달빛이 머리 위에 있으니까 나름대로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옥상에서 쓰는 짧은 글'이라는 큰 제목은 이런 상황에서는 절대 긴 글은 쓸 수 없겠다,고 생각해서 지은 것입니다. 하지만 쓰다보니 긴 글이 된 것도 - 원래는 두 줄 정도만 써보려고 했기 때문에 - 기쁜 일입니다.


앞으로도 제 삶은 이런 식으로 흘러갈 것 같습니다. 삶이란 다 이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별반 다르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라고 말씀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저 (저는 겪어보지 못할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부러울 따름입니다.


적당히 추위를 막아줄 외투와 계단을 오르내릴 시간이 있으신 분들은 지금 옥상에 한 번 올라가보세요. 좋네요. 옥상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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