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이 찾아온 변화
이유 없이 울컥 짜증이 치밀고 답답함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추웠다가 더웠다가 갑자기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양쪽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로 이어진 사지는 쑤시듯 아팠다. 그중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팔을 어깨 위로 들어 올릴 때 승모근과 쇄골, 뒷목까지 ‘찌릿’하게 오는 통증이었다. 매일 옷을 갈아입거나 머리를 묶는 등 일상생활에서 팔을 들어 올려야 하는 것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분명 어딘가가 단단히 고장 난 것이었다.
정형외과를 시작으로 한의원, 통증클리닉, 아로마마사지 등 가능한 모든 치료를 다 해보았지만, 통증은 하루 이틀 줄어들 뿐, 뚜렷한 병명도 원인도 찾을 수 없었다.
전혀 모르는 분야의 새로운 일에 발을 들였기에 스트레스 탓이라 생각했지만, 병원에서의 반응과 내 증상들을 종합해 보니 그동안 애써 외면하던 마음속의 불안이 훅 치밀어 올랐다.
셋째 아이를 유산한 이후 불규칙했던 생리가 올해는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딱 갱년기 증상인데, 나는 이제 막 40대 초반 여성이지 않은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동네 산부인과에서 암 검사와 호르몬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폐경'이었다.
몇 년째 아이들에게 '엄마 갱년기니까 열받게 하지 마라'고 장난처럼 말해왔지만, 의사 선생님의 진단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선생님께서는 준비된 PPT를 띄워가며 조기 폐경의 원인과 증상, 폐경기 여성의 신체적·정신적 변화, 앞으로의 대처법에 대해 꽤 정성스럽게 설명하시며 나를 위로하기 위해 애쓰셨다. 미세플라스틱이 조기 폐경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몇 년째 페트병에 든 생수를 마셨던 탓인가'라며 함께 원인을 찾기도 했다.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폐경 이후 가장 큰 위험인 골다공증을 설명하실 때는 멀쩡했던 허리가 뻐근하고 무릎이 시큰거리는 기분까지 들었다.
'어떤 호르몬제를 처방해 드릴까요?'
선생님이 물으셨다.
'네? 아... 호르몬제를 꼭 먹어야 하는 걸까요?'
내가 다시 물었다.
선생님은 무시무시한 골다공증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셨다.
나는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병원을 믿을 수 없어.'
동네 산부인과를 나서며 나는 두 아이를 출산했던 산부인과에 진료 예약을 했다.
그러나 역시 서울 병원에서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나는 약을 지금 꼭 먹어야 하는지 물었고,
두 아이를 받아주셨던 원장님께서는 꼭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하셨다.
물론, 지금 느끼는 나를 힘들게 하는 증상들이 약을 먹으면 한결 나아질 테니 참고하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많이 울었다. 내 안에 쌓여있던 깊은 서러움과 나를 괴롭히는 신체적·정신적 변화들의 원인을 찾은 후련함 등, 복잡한 감정이 터져 나왔다.
며칠이 지나 남편에게 말했다.
그리고 또 며칠 후, 고등학생이 된 첫째와 이제 막 사춘기를 넘긴 둘째 아들에게도 말했다.
남편은 나를 꼭 안아주었고, 두 아들들의 반응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아... 그래요?' 정도였던 듯하다.
마흔한 살이 되던 해에 나는 이렇게 완경을 한 갱년기 여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