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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쎄쓰 애듈란 Aug 27. 2024

변화의 무게를 견디며

"나 폐경이래. 요즘 갱년기 증상 때문에 상태가 좀 안 좋은가 봐."


"언니, 요즘 많이 바쁘고 힘들죠? 볼 때마다 피곤해 보여요. 어디 아파요?" 걱정스럽게 묻는 지인에게, 

나는 최대한 가볍게, 별일 아니라는 듯 나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찾아온 이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무겁게 다가왔다. 그렇게 별일 아닌 듯 말하면 정말 별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에~~이~~~ 언니~~~이, 언니 나이가 이렇게 젊은데에 무슨 갱년기예요. 말도 안 돼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평소처럼 애교를 잔뜩 섞어 대답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천진난만하고 진심으로 느껴져서 나는...

"그런가? 아무래도 그렇지? ㅎㅎ;;;"

라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하... 별일이 맞긴 맞구먼... ㅡㅡ;;;)

그 후로는 차마 '폐경'이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대신 '갱년긴가 봐'라고 여기저기 푸념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정도만 다를 뿐, 위의 친구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갱년기 증상보다, 내가 폐경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이 나를 가장 비참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나를 현실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지만, 내 안에는 점점 더 깊은 고립감이 자리를 잡았다.


 당시 나는 몹시 지쳐 있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가기 위해 새로운 감각을 깨우고 발전시켜야 했던 만큼, 어떤 감각은 둔감해지도록 다스려야 했고, 퇴화되기도 했다.


 40대에 육아를 마친 경력 단절 완경 여성이 된 나는, 누구의 아내, 엄마로서가 아닌 '나 자신'으로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이 너무 많이 남았는데,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함에 짓눌리는 기분이 드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몸은 더 무겁고 낯설어졌다. 체형은 눈에 띄게 변했고, 살도 부쩍 쪘다.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숨이 차고 힘들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더 이상 익숙하지 않았다. 몸이 무겁고 낯설어지면서, 내 자신도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기력함은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보며 보내곤 했다.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이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 안의 혼란과 무기력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주변의 이해와 위로에도 불구하고, 이 변화는 오롯이 내가 겪어내야 할 몫으로 느껴졌다. 사람들과의 만남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들과의 일상적인 만남이 때로는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더 고립시켰다. 하지만 그 고독 속에서도 묘한 안도감이 있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그리고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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