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에서 보내는 짧은 글 시리즈
나는, ㄹㅇㅇ. 29세. 현재 백수. 지금은 호주 멜버른이다.
ㄹㅇㅇ라는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버들 류, 동방 인, 예쁠 아. 내가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유인아였는데 두음법칙 인정하는 판결 이후 “류”라는 성을 되찾았다. 어렸을 때는 이름이 바뀌고 학교에 설명하고, 친구들한테 설명하고, 갈 때마다 이름을 잘 못 알아듣는 것 때문에 굉장히 스트레스였다. 그 당시 나는 내 이름이 ㅇㅇㅇ라며 꽤 만족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 당시보다 열 살은 더 살고 보니 내 이름이 꽤 마음에 든다.
ㄹ이라는 문자는 발음하기 어렵지만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그리고 흔하지 않은 성이라 더 마음에 든다. 특별하고 싶은 병이라도 있는지… 이제는 어디 가서 이름 말할 때마다 리을 류라고 자연스럽게 덧붙인다. 인아라는 이름도 살면서 정말 유용하다. 이름의 의미도 이젠 동방의 최고 예쁜 사람이 되지는 못하지만 예쁘다 대신 여러 의미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내 이름의 효용성은 영어로 쓰면 나온다. RYU INA 단 6글자이다! 많은 한국 이름들이 영어로 표현하기 어렵거나 외국에서 발음하기 어려운데, 내 이름은 미국, 유럽, 일본 모든 나라에서 통하고 심지어 북유럽에는 INA라는 성(인지 이름인지 모른다)도 있었다.
나는 현재 백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4년 반 동안 끊임없이 일하다 일하는 걸 중단해버렸다. 난 좀 극단적이다. 쉴 거라는 다짐을 하고 이다음 회사를 알아보지도 않고 회사를 그만둬 버렸다. 내가 하기로 결심한 건 꼭 해야 한다. 지난 5년간을 돌아보니 나에게 휴식을 준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냥 무작정 쉬려고 했다. 근데 또 걱정은 많다. 슬슬 취업준비 위한 공부를 해야 하나 생각도 든다. 그래서 불안해하지 않기 위한 대비책으로 하루 하나씩 코딩 인터뷰 문제를 푸는 걸로 나와 합의를 봤다.
회사를 관두고, 여기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남반구로 와버렸다. 발레단에서 하는 발레수업이 있다는 말에 호주 멜버른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카페 성지라는 말에 멜버른으로 떠날 결심을 했다. 2주 반동안 멜버른에서 열심히 안 사는 게 목표다. 쉬는 건 내가 제일 못하는 거다. 내 남자 친구는 방학 때, 주말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해 몸부림치는 나를 보며 정말 신기해했다. 스스로를 가만히 놔두지 못한단다. 주말에 혼자 있는 날엔 뭔가 일을 저지른다. 둘러보다 분갈이할 화분이 보이면 분갈이 날로 삼아 분갈이를 싹 해버린다거나, 방 구조가 순간 맘에 안 들면 방 배치를 바꿔버린다. 여기엔 침대 매트리스를 옮기는 것도 포함이다.
나는 금방 질린다. 지금껏 제일 오래 질리지 않은 건 내 남자 친구이다. 그 외의 것들은 금방 질렸다. 인테리어도, 옷도, 헤어스타일도, 취미도. 근데 한번 꽂히면 끝장을 본다. 그럼 질리는 게 아니라 끝을 본건가? 암튼 한 취미에 꽂힐 때마다 무조건 최고 장비를 사는 등 돈을 아끼지 않는다. 뭔가 열심히 안 하면 제대로 안 한 기분이다.
취미뿐 아니라 일도 그래서 한번 바꿨었다. 프런트 개발을 하다 팀을 옮길 타이밍이 있었는데, 여기도 많은 일이 있다, 여러 고민 중 내가 안 해본 백엔드 개발이 혹시나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훅 아무 경험 없는 백엔드 개발 팀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찐하게 해 봤고, 그리고 안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공도 생각해보니 그랬다. 고등학생 때 생물이 좋았던 나는 생명과를 지원했고, 대학도 생명 전공을 했다. 두 학기 전공을 들으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다음 학기 고민되던 전산과 수업을 들었다. 물론 하나만 들은 게 아니라 남들 한 학기 반 정도 분량을 한 학기에 몰아 들었다. 뭔가 이렇게 보니 참 극단적인 사람이다.
나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안 들면 뭔가 아쉽다. 그리고 내가 뭔가 더 잘할 수 있는 일, 더 재미있는 일을 놓치고 있을까 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의 얘기에 관심이 많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어떤 재미있는 영화, 음악, 취미, 음식점이 있는지 내가 혹시 손해보고 있는 건 아닌지. 내 몸은 하나고 모든 경험을 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들의 얘기 듣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인터뷰하고 인터뷰당하고, 인터뷰를 보는 걸 좋아한다. 인터뷰하는 걸 좋아해서 했던 활동들도 있다. 내가 인터뷰어로써 얘기를 나누면서 상대방의 숨은 매력을 이끌어내고, 상대방이 아! 하는 모먼트가 생기면 정말 즐겁다. 말로 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말로 꺼내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난 약간 홍익인간 사상인 사람이다.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고, 불의를 보면 참기 어렵다. 그러나 싫은 사람들도 있다. 난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난 착한 사람은 아니다. 내 기준에서의 옳고 그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호불호가 확실한 것뿐이다. 그리고 지는 것을 싫어한다. 그렇다고 행동이 앞서지는 않는다. 대부분 속으로 부글부글 하고 있다. 가끔은 화를 냈어야 했나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화를 내서 똑같아지는 것보단 언젠가 엿 먹겠지 마인드로 살아가려고 하고 있다. 아 참고로 화난 게 다 티가 나긴 한다. 불같은 사람이다. 좋은 척 못하고 화 안 난 척 못한다.
그래서 일 할 때도 적당히 하고 적당히 이해하고 적당한 감정으로 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럼 왠지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다. 적당히 하면 결과물에 납득이 안된다. 적당히 이해하고 하면 최고의 결과물이 안 나온다. 적당한 감정으로 하면 후에 돌아봤을 때 아쉽다.
나는 자기애가 높다. 나 스스로 멋진 사람이 되고 싶고, 멋진 사람이 되려 노력하며 스스로 멋진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런 내가 하는 일이 멋지지 않다면, 적당히 좋게 좋게 한다면 스스로 용납이 안된다. 뇌 빼고 살면 편한데, 그게 잘 안된다. 뭔가에게 지는 느낌이다.
나는 억지로 하는 걸 싫어한다. 옛날부터 그랬다.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에 가면 동그라미 채우는 게 너무 싫었다. 피아노 대회에서 연습할 곡을 선생님이 정해줬는데 그게 싫어서 울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했다. 결국 같은 초등학교 1학년 중에서 1등을 했다. 아무리 싫어도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면 일단 최고로 해야 한다. 억지로 하는 것보다 내가 못 해내 보이는 게 더 싫다.
나는 지는 게 싫다. 나에게 지는 것도 싫고 내가 싫어하는 다른 사람보다 지는 게 싫다. 그래서 내가 하는 것들에 대해 최선을 다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결과물을 내보이기 쪽팔리고 부끄럽다. 이런 기준으로 항상 살아왔기에 지금은 부끄럽지 않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한다. 나를 지탱하기 위한 힘은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노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