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양보를 권하지 않았다.
오늘, 휴가 그리고 가출과 양보
어머니의 일정에 맞춰 나도 휴가를 냈다. 내게는 봉사 같은 것이다. 같이 있는 것. 스물다섯, 신입사원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남자가 종이접기를 좋아한다고 비꼬던 경상도 아버지. 내가 미술대학에 들어갔을 무렵엔 기특함과 부담감으로 살아왔고, 대기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는 그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그 때문일까. 가끔 병원 신세를 지던 아버지는 갑작스레 죽었다. 내가 대학생인 시절. 가끔 잠결에 아버지는 잠꼬대를 했다고 어머니께 들었다. 지금은 못 간다 라고.
아버지가 없는 시간은 조용하게 우리 가족을 바꾸어 놓았다. 한동안 늘 눈시울이 붉어지던 어머니는 이제 무섭던 운전을 꽤 한다. 남동생은 정이 많아지고 제법 어른스러워졌다. 반면 나는 더욱 일을 사랑하게 되었고 사사로운 감정에 둔감해졌다. 각자 처한 환경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그 빈자리를 메꾸는 것이다. 폐해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성장도 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사라질 수는 없다. 보고 싶다, 그립다가 아니다. 대체할 수 없는 그 역할이 계속 생겨나기 때문이다.
휴가나 명절이 되어야 어머니를 찾아가는 나는 마땅히 할 이야기가 없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옛날이야기를 내뱉곤 했다. 내가 알던 그와는 다른 이야기들. 가난한 시골의 장남으로 태어나 원하던 학업을 금지당했다. 고등학교를 가지 말라는 말에, 가족을 버리고 한동안 서울로 도망친 적도 있는 내 아버지. 장녀로 태어나 동생 뒷바라지에 지쳐 가출하려 했던 내 어머니. 그들은 가족 때문에 자신을 버려야 했다. 무척이나 버리기 싫어했다. 그러나 결국 양보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양보를 권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 둘은 함께 성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