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사라졌다. 지금. 마음이 무척 편해졌다.
혼자가 편한 덕에 누굴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겐 단편적인 기억만 있다. 여백이 길어서 엮을 수도, 쌓을 수도 없는 무익 무해한 것. 다만 이상하게도 늘 반복된다. 헤어진 이후 그들의 기억이 흐릿해질 즘. 다른 누군가를 만나 그들의 입장이 된다는 것. 어떤 입장도 좋을 건 없다. 또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었었다. 그런 일은 빛과 어둠을 모두 가졌다.
불 꺼진 방에서 휴대폰을 붙잡은 모습은 어쩌면 늘 다를 바 없는 날이었겠지만,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 그건 분명 내가 아니다. 동시에 늘 반복되는 내 모습이기도 하다. 단서를 찾으려 어릴 적부터 모아둔 쪽지함을 꺼냈다. 버리지 못한 수많은 편지들. 나는 과거로부터 배운 것도, 능숙해진 것도 없다. 오늘, 다들 내게 유별나게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 말했다. 사실 아주 오랜 주기로 늘 반복되는 일상이다. 달처럼 더욱 멀어지는 주기로.
퇴근 후 돌아오는 골목길은 우울했다. 걷는 걸음마다 실감할 정도로. 장막을 연 만큼 고스란히 스며드는 감정. 비가 거세졌다. 신발이 젖었다. 인상을 썼다. 꺾인 우산을 두 손으로 꽉 쥔 채 걸었다. 생각을 꺼낼 틈도 없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온몸이 흠뻑 젖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 나도 모르게 웃었다.
늘 누굴 만날 때마다 잊고 있었다. 나는 나를 살고 있다는 걸. 그들도 그들을 살고 있다는 걸. 보이지 않는 줄을 놓아두었다. 여름은 사라졌다. 지금. 마음이 무척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