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다시 태어났다.

태양은 변하지 않았다. 제 육중함으로 여전히 세상을 묶어둘 뿐이다.

by 류인환

태양은 변하지 않았어. 어제와 다름없이 제 육중함으로 세상을 묶어둘 뿐. 지구는 불가항적으로 그녀 주위를 맴도는 순박한 그들 중 하나야. 다만 지구 한쪽 면. 작은 책상에 걸터앉아 우주를 비행하는 우리들에게 태양은 별안간 다시 태어났어. 있다, 없다를 반복하는 어른들 재롱에 반색하는 아기처럼. 매 번 눈물 흘리며 부인을 끌어안는 치매 걸린 노인처럼. 우리는 태양의 빛살에 맹목적인 감탄을 걸어.


잠깐 태양이 사라진 밤. 낯과 시작의 열기가 사라진 지면은 공기마저 사라진 듯 공허해서, 가끔 한숨 쉬는 묽은 입김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숨마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긴 밤 동안 우리는 스스로의 얼굴을 잊고 말았나 봐. 어떤 초상을 그려야 할지, 펜은 긴 정체구간을 지나는 중이야.


암흑은 특유의 온기와 두터움으로 우리들 몸짓을 포근하게 가려서, 가끔 경련하듯 뻗는 잠꼬대가 아니었다면 자신의 자세마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긴 밤 동안 우리는 스스로의 몸짓을 교정할 수 없었나 봐. 무엇을 집어야 할지, 늘어진 손가락은 밤의 이불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어.


시간의 장막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묵을 연장해서, 먼 곳의 기침 소리가 아니었다면 서로의 존재도 가늠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긴 밤 동안 우리는 서로의 의중을 짐작하다 너무 지쳐버려서, 홀로 날 선 결론을 지어버리곤 했어.


꿈속. 얼굴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 그가 내게 덤벼드는 알 수 없는 의중은 어쩌면 밤의 거울에 비친 자신일지 몰라.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무서운 거야. 졸린 눈을 비비고는 이곳이 현실이며 누구도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한숨 쉬며 해를 기다리는 새벽.


그래서 우리는 매번, 그녀를 처음 본 것처럼 반색하게 되었어. 치매 걸린 노인처럼. 손바닥이 세상의 전부인 아기처럼. 맹목적인 기대를 걸게 되었어. 다시 태어난 저 태양과 함께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지난날을 고쳐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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