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안, 그리고 너머

나와 바깥세상 사이 얇은 벽에 대해서

by 류인환

상아색 블라인드 면 안쪽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반쯤 가려졌어. 검은 형체로 지나치는 행인, 붉은 점으로 유영하는 자동차로 바깥 흐르는 움직임을 볼 수 있지만 그것뿐이야. 블라인드를 걷어낼 수는 없어. 블라인드는 감정을 숨긴 채 엷게 짓는 미소이면서, 몸을 가리는 코트와 같아.


블라인드를 걷어낸다는 건, 행인과 온전히 마주하는 거야. 그들의 엷게 짓는 미소, 두터운 코트 속에 숨겨진 목소리. 그들은 내게 애정을 숨겼을 수도 경멸과 혐오를 숨겼을지도 몰라. 어쩌면 장막 걷은 세상에, 누구도 내게 눈길을 두고 있지 않을지 모르지.


또한 블라인드를 걷어 낸다는 건, 겉옷을 벗어낸다는 거야. 홀연히 스며드는 추위에, 우리는 열기를 잃을지 몰라. 세워둔 순서, 규칙, 다짐 같은 주춧돌에 금이 갈지도 몰라. 나라는 것이 사라져 버릴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라인드는 순면의 질감 사이로 바깥세상을 내게 흩뿌리고 있어. 마치 유혹하는 전광판처럼. 저것을 걷어내면 더 넓은 광경과 기쁨, 고통이 밀려들 것이라고. 마자랭이 말했어. 나를 버리고 세상을 한번 얻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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