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공기

어른이 된다는 것. 가을. 홀연히 나타난 찬 공기와 마주하는 것이다.

by 류인환

아스팔트에 던져진 정육면체의 쇳조각은 붉게 달아올랐어. 다만, 이제 가을. 시끌벅적했던 열기는 사라졌지. 대신 찬 공기가, 고개를 든 시선 너머부터 내 발목까지 밀려들어 감돌고 있어. 세상은 넓어지고 고요해졌어. 붉던 쇳조각은 어느새 검보라색이 되어 분무처럼 풍성한 증기를 뿜어내는 중이야. 체온은 떨어지고 표면에 껍데기가 일어. 정육면체 곳곳에 푸른 반점이 들었지. 하지만 굳지 않았어. 쇳조각은 푸른 몸 바깥으로 여전히 화산재 같은 숨결을 뱉어내. 찬 공기가 휘감은 주변. 변한 건 없어. 하지만 낯설어. 어른이 된다는 것. 가을. 홀연히 나타난 찬 공기와 마주하는 거야.




변한 건 없어. 일에 대한 애정도, 주말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습관도. 다만 능숙해졌어. 모든 것이 빨라졌고 묵직해졌어. 몸을 이룬 입자들은 찬 공기에 서로를 옭아 메어 굳어졌어. 늦잠은 사라졌어. 의미 없는 밤새움도 사라졌지. 형용할 수 없는 말들이 사라지고 뜨겁던 샤워 물이 차가워졌어. 머리 길이는 늘 짧아.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정육면체의 쇳조각이 되었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하지만 변한 건 없어. 바뀌지 않는 천성처럼 같은 수레바퀴 안을 걸어가고 있어. 장소와 소재가 달라질 뿐. 지금도 나는 세워둔 벽을 부수지 못해. 지나친 솔직함을 감추지 못하고 내 시간을 빼앗기지 않아. 무관심을 넘어서지 못해. 그래서 찾아오는 불 꺼진 방. 마주하는 침묵. 다만 변한 건 있어. 인정하는 것. 나 이기에, 그런 것들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 그때 찬 공기와 마주하게 되었어.


익숙한 세상은 낯설었어. 좁았던 거리는 넓고 휑해. 사람들과의 거리는 가늠했던 것보다 멀어. 알아낼 수 없는 비밀이 있고, 의지로 이룰 수 없는 바람이 있어. 그 시간, 시간마다의 광경이 느리게 보여. 아직 쇳조각은 굳지 않았어. 영원히 내부는 묽고 붉을 거야. 다만 굳어진 표면만큼 우리는 묵직해지고 초연해져.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했어. 찬 공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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