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 일기

오늘, 새벽길 그리고 검은 아침

조금씩 차오르는 태양이 좋다. 그럴 때면 나도 함께 차오르는 것 같아서.

by 류인환

오늘, 시차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화상회의가 잡혔다. 5시 30분 그리고 6시 알람에 이불을 뒤척이다 일어섰다. 한 밤중 물을 마시러 나설 때처럼 검고 차가운 거실. 손을 더듬어 보일러 버튼을 눌렀다. 수전에서 내리는 열수는 욕실에 더운 증기를 만들었다. 이를 닦고 몸을 씻고 다시 가글로 입을 헹구는 동안, 뜨거운 빗물에 몸이 충분히 데워졌다. 심호흡을 하고 찬물로 몸을 다시 헹군다. 수도꼭지를 굳게 잠그고 거울 앞 머리카락을 세심히 말리기까지, 삼십 분 간의 긴 과정.


옷을 하나씩 꺼내 입는 동안 창문을 힐긋 보았다. 혹시, 늦장에 벌써 하늘이 밝아져 버린 건 아닌가 하고. 한겨울에 가끔 맞이하는 의례가 있다. 해뜨기 전 새벽. 검은 하늘에 밖을 나서는 것. 내겐 기쁨이다. 밝은 하늘이 싫은 건 아니다. 겨울 햇살은 특히 소중하다. 다만, 조금 더 늦게 맞이하면 좋겠다. 이미 앞선 것보다, 조금씩 차오르는 태양이 좋다. 그럴 때면 나도 함께 차오르는 것 같아서.


검은 하늘. 빈 거리는 낮보다 넓어 보인다. 시간이 멈춘 길을 걷는 기분이다. 그래서 시간을 번 느낌이 든다. 한적한 정류장. 이른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는 줄 앞에서 태양 같은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버스를 지나치는 거리. 잠든 검은 초목 아래로 백청색 안개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증기는 이제 어둠을 탈색하기 시작했다. 가로수의 잔가지는 기지개 켜듯 수백 개의 손가락을 하늘에 뻗었다. 빌딩에 도착했을 때. 반쯤 차오른 백색 물결을 담은 유리벽 안 로비에는 사람들이 분주히 들어서고 있다. 어느새 흰 보름달은 지면을 향해 침잠하는 중이다. 오늘, 나는 태양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한겨울의 검은 아침이 좋아졌다. 13년 전 열차를 타고 올라와 시간을 재며 그림을 그리던 날들. 스스로 선택했던 검은 아침이 유독 싫었다. 보이지 않는 건 눈앞의 거리만이 아니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문득 다시 맞이한 검은 아침은 제법 반가웠다. 새벽길은 내게 안도감을 준다. 오늘, 너는 여전히 해가 뜨는 길을 걷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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