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누군가의 마음을 차오르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
안식휴가를 맞아 2주간 쉬게 되었다. 금요일, 마지막 퇴근길에 라식을 하려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상담원은 내게 5일간 소프트렌즈를 벗어둬야 검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게 첫 휴가가 시작되었다. 그 5일 간, 안경을 쓰고 대낮 거리를 걸어본 게 언제였던지.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마다 안경 바깥과 안의 단차 때문에 발을 헛디뎠다. 시력이 안 좋아 렌즈가 꽤 두껍다. 그래서 안경을 쓰면 눈이 무척 작아진다. 그 모습을 본 친구들은 내게 못생겼다고 놀리곤 했다. 나 역시 안경 쓴 스스로의 모습을 비춰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 내가 안경 쓴 모습을 보며 놀라지 않는다면, 오히려 내가 안경을 코에 갖다 대었다 멀리 대었다를 반복하며 눈이 콩알만 해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못생긴 안경은 그저 꼈다 빼는 부품일 뿐이라는 뜻으로. 근처 편의점을 갈 때도 꼭 소프트렌즈를 끼고 나갔다. 무려 12년 동안.
휴가 6일째가 되어서야 안과를 가게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두 시간 동안 컨베이어 벨트처럼 늘어선 장비를 오가며 열 개가 넘는 시력검사를 받았다. 내 동공은 여러 기계의 섬광을 폭죽처럼 맞이했고 정원 속 하얀 집을 찾아 헤맸다. 마취약을 바른 후 종이를 끼워넣기도 했고 바람을 불어넣고 막대로 눌러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의사는 바로 수술을 진행하자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뒤를 따랐다. 그렇게 끝없이 미뤄왔던 라식수술을 받게 되었다. 12년 간, 주위의 설득에도 억척스레 하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던 나는 그저 안식휴가에 마땅히 할 것이 없다는 이유로 너무도 가볍게 수술대 위로 올라가버렸다.
의사는 어둠 속의 작은 별을 주시하라고 했다.
별을 놓치면, 그래서 동공의 위치가 틀어지면 수술은 실패하는 것이라고. 힘을 주지도 말라. 안구에 압력이 들어가면 안 된다. 생각보다 몸서리치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나는 웃었다. 하지만 곧 마취로 둔해진 동공에 유리막이 눌러앉은 감각을 느꼈고 기계가 차가운 말투로 "Laser set, Start."라고 말했을 때, 나는 배 위로 편히 깍지 꼈던 손을 꽉 꼬집었다. 바늘구멍보다 작은 초록 별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의사는 내게 빛이 중간에 사라져도 그곳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다. 곧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레이저가 각막을 깎아내고 있다. 새벽의 소금사막처럼 광활했던 회색 세계는 곧 은하 없는 밤이 되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초라하게도 죽음이 떠올랐다. 곧 시린 철제 집게가 각막의 찌꺼기를 조그만 생채기를 통해 뽑아내는 걸 느꼈다. 주위는 다시 밝아졌다. 병원 실내가 보이고 초록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보인다. 수술은 일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스탭이 내 팔을 부축하며 길을 안내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팔을 살짝 뿌리쳤다.
의자에 앉아 오랜 시간 대기했다. 감은 눈에선 방금 전 뿌옇게 흐려졌던 시야, 그리고 녹색 별의 잔상이 남아있다. 방금 전 밀쳐냈던 선의의 부축을 떠올렸다. 나는 스스로를 꽤 초연하다 생각했었다.
홀로 병원을 나왔다. 가방에서 선글라스 꺼내고 지하철로 걸어갔다.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굳이 혼자 가겠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집 앞까지 가면 된다고. 하지만 택시를 타지 않았다. 방금 전의 공포, 그리고 스스로의 수치심에 휩싸인 난 구태여 지하철로 걸어내려 갔다. 시야는 뿌옇게 흐려져서 휴대폰을 동공에 닿을 듯 갖다 대고서야 어떤 글자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나중에 답장하라는 어머니의 걱정 섞인 카톡에 굳이 즉각 대답을 입력하며.
라식을 치른 다음 날, 치과에 전화를 걸었다. 사랑니를 뽑겠다고. 의사는 내게 5년 만에 나머지 사랑니를 뽑으러 온 것이라 알려주었다. 바로 수술을 시작하자고 한다. 의사는 내게 웃으며 말했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오셨죠?" 물론 오늘 이를 뽑으러 온건 맞다. 하지만 휴가는 길었고 굳이 라식을 한 다음날 또 수술을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어제 수술대의 공포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고 그렇게 또 고집을 부리게 된 것이다.
입을 크게 벌렸다. 곧 잇몸에 바늘이 들어갔다. 고통이 들어찰 땐 힘을 풀고 흘러가듯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다. 얼얼해진 잇몸에 차가운 바람결과 긁어내는 칼질이 느껴졌고 드릴의 전동, 헤집는 집게의 완력을 느꼈다. 거즈를 문 채 아이스팩을 받고 병원을 떠났다. 길을 걸으며 5년 전, 처음 사랑니를 뽑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겨울이었고 볼은 심하게 부었었다. 피어나는 뺨의 열기가 겨울바람에 식어가던 감각이 그때와 같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어떤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왜 병원을 찾아갔고, 그때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 계절은 어떤 것이 큰 걱정거리였고 그 해는 어떤 것에 설레어했었는지.
그런 생각에 미치자 나는 집 대신 중앙박물관을 향했다. 부은 뺨에 찬바람을 조금 더 쐬고 싶어서. 그리고 이번에는 기억할 만한 맥락을 지어두고 싶어서. 박물관에서 꽤 오랫동안 아이스팩을 뺨에 대고 걸어 다녔다. 아이스팩이 작아서 누가 봤다면 전화하는 줄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며칠간 집에서 끝없이 유튜브를 봤다. 동물, 상식, 과학, 역사, 경제, 코미디, 책, 영화 같은 것들로 가득 쌓인 구독 목록은 어느새 65개가 되었다. 굳혀졌던 루틴은 깨져버렸다. 늦잠을 자게 되었고 식사도 예전처럼 불규칙해졌다. 그러다가 월요일에 회사 회식에 참석했다. 근 10일 만에 보는 팀원들이 낯설었다. 그동안 말을 할 일이 없어서 그런지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팀원들은 왜 그렇게 낯선 티를 내냐며 퉁명스레 말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휴가 내내 회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구는 내게 더 이상 휴가 내내 회사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좋은 것이라 말해주었다. 좋아지는 것일까 나빠지는 것일까. 어느 쪽 인지 가늠할 수 없다.
거짓말처럼 변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미처 눈치도 채지 못하는 사이에.
회식이 끝날 때 즘에서야 회사 분위기에 적응했다. 11시가 되어서야 각자 헤어졌다. 같은 방향의 회사 동료가 택시를 타고 갈 거냐고 물었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간다고 말했다. 그러다 생각이 들었다. 나는 휴가 내내 넘치는 잠을 잤고, 두 건의 수술로 술도 마시지 않았다. 반대로 그 동료는 월요일 회사일을 마치고 유난히 늦은 술자리까지 마친 상태란 걸. 내가 먼저 택시를 타자고 말했다면 좋았다. 그러다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낯설었다. 예전 대학생 때는 친구를 두고 먼저 가버린 일 때문에 두고두고 놀림을 받곤 했다.
회식을 마치고 잠이 든 다음 날, 온몸이 시리고 머리가 아팠다. 몸살이 들었다. 남은 휴가 때, 동료 결혼식 사회를 보느라 미뤄둔 운전면허 마지막 시험을 치를 생각이었는데. 눈은 플라스틱 공처럼 퍽퍽했고 잇몸은 연신 욱신거린다. 보일러를 틀고 바닥에 몸을 데워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그러다 기침을 하며 일어나 목을 축이고 컬투쇼를 틀었다. 그때 떠올랐다. 지난 5년 전, 처음 사랑니를 뺏을 때도 몸살을 치렀고 컬투쇼를 들었다고. 그 고통이, 기억이 사라짐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는 게 놀랍다.
생각에 관한 생각이란 책에서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에게 기억하는 자아와 경험하는 자아가 있다고 했다. 그중에 우리는 기억하는 자아로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잊어버린 고통은 없던 일과 다름없는 것이다. 잊고 싶은 걸 쉽게 잊어버리는 내게, 사라진 고통 혹은 수치는 없던 일이 돼버린 것일까. 그것은 또 우리에게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잠 못 드는 새벽에 병원을 가야 할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고통은 또 한 번 작은 공포가 되었고 참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또 스스로에게 고집을 부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평소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던 아버지의 고집이 떠올랐고, 어느 날 농익은 병 때문에 거짓말처럼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와 나는 비슷한 걸음으로, 눈앞에 주어진 다른 길을 걸어온 것일 뿐인지 모른다. 다음 날, 나는 거짓말처럼 푹 나았다.
어느덧 휴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가벼워진 몸을 이끌고 카페로 나섰다. 그리고 읽다 만 책을 꺼내 읽었다. 사실 소설은 거의 보지 않는다. 심리학, 경제경영서를 주로 보는 편이다. 누구는 그런 자기계발서는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누구라도 그런 얘기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반대로 내겐 그런 부질없는 책이 성경과 같다. 자잘한 걱정과 타성이 먼지처럼 쌓인 내게 다시 한번 믿음과 자기반성을 북돋아주기에. 잊었던 회사 일과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과 의지가 조금씩 차오른다. 그 성경에 따르면 너무 많은 볼 것들로 가득 찬 환경은 우리에게 깊이 생각할 여유를 빼앗는다고 했다. 그래서 쓸데없는 유튜브 채널을 골라냈다. 그리고 잠들기 전 하나의 유튜브를 골랐다. 소설 데미안에 관한 내용이다. 강사님은 너무도 쉽게 책 이야기를 간추려 들려주었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나를 공포에 빠트렸다 구원했고 깊은 여운을 남겼다.
나도 소설을 쓴다. 스무 살, 처음엔 뱉어내지 못해 묶인 생각을 털어내기 위해 글을 썼다. 그러다 스스로를 격려하고, 정의하기 위해 썼다. 그렇게 서른 살이 되고서야 '나'라는 소재를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색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여운이 남는 결말을 지으려 노렸했다. 이젠 누군가의 마음을 차오르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 "새는 알에서 태어나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상을 깨뜨려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직면한 선과 악의 경계에서 만난 또 다른 자신은 난관에 막힌 주인공에게 스스로를 벗어날 문을 열어주었다. 대작가는 내게, 태연한 척 숨겨온 두려움과 고집. 늘 가방에 부적처럼 붙들고 있는 베스트셀러. 그리고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 이 모든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정일 뿐이라는 걸 알려주었다.